가습기 살균제 피해 1심 선고
신현우 前옥시대표 등 4명 7년刑… 존 리 前대표는 증거부족 무죄
피해자 가족들 “납득못할 판결” 반발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 임직원들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피해자들의 폐 손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69) 등에게 적용된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불거진 지 약 5년 반 만에 나온 첫 형사처벌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최창영)는 6일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해 이를 사용한 피해자들을 폐 손상으로 죽게 하거나 다치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상) 등으로 기소된 신 전 대표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살균제 원료 물질의 안전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아이에게도 안심’이란 거짓 문구 등을 제품 용기 라벨에 표기해 업무상 과실이 인정된다”며 “제품 안전성의 최고책임자로서 주의 소홀로 큰 인명피해를 일으켜 엄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함께 기소된 옥시 연구소의 조모 소장(53)과 김모 전 소장(56), 가습기 살균제 ‘세퓨’의 제조사 대표 오모 씨(41)에게도 각각 징역 7년이 선고됐다. 징역 7년형은 이들에게 적용된 업무상 과실치사상과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했을 때 내릴 수 있는 법정 최고형이다. 이들은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독성 화학물질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 약 453만 개를 제조·판매해 이를 사용한 소비자 73명이 숨지는 등 모두 181명의 사상자를 낸 혐의로 기소됐다.
옥시 제품을 모방해 자체브랜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유통업체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관계자들에게도 실형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옥시 등 법인 3곳에 벌금 1억5000만 원을 선고했다. 다만 신 전 대표에 이어 옥시레킷벤키저 대표를 지낸 존 리 씨(49)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존 리 대표가 옥시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이나 라벨 표시 문구가 거짓이라고 의심할 만한 보고를 받았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이같이 판단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신 전 대표 등에게 적용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상습사기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신 전 대표 등이 사전에 제품의 위험성을 알지 못했고, 문제가 된 제품을 판매할 때 사기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적용된 혐의 중 법정형이 가장 높은 사기죄가 인정되지 않아 실제 형량은 검찰이 구형한 징역 20년에 크게 못 미쳤다.
이날 피해자 가족과 시민단체 등 방청객 200여 명은 선고 과정을 지켜봤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만성 폐질환을 앓고 있는 임성준 군(14)의 어머니 권미애 씨(41)는 선고 직후 “성준이는 지금 15년째 앓고 있고 앞으로 얼마나 더 이렇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데 고작 7년으로 죗값을 치를 수는 없다”며 납득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피해자 가족과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자와 유족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의 생각과도 동떨어진 어처구니없는 판결”이라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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