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충북 진천군의 한 종오리 농가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진 판정이 내려진 뒤 오리의 반출 경로를 묻는 기자에게 농림축산식품부 방역관리과는 이같이 대답했다. 농식품부에서 알려준 대로 현장방역담당인 AI예방통제센터에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통제센터도 “우리는 파악하지 않는다”란 똑같은 답변을 내놨다. 이후 몇 단계를 더 거쳐 해당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반출 경로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튿날 전남 나주시의 또 다른 종오리 농장에서 의심신고가 접수됐을 때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게다가 해당 지자체조차 “잘 모른다”란 말을 녹음한 것처럼 토해냈다.
AI는 매년 겨울이면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일이다. 하지만 올해 정부의 대응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뒷걸음치고 있다. 농식품부 주무 부서와 AI 상황실은 도살 처분 마릿수를 하루 1번만 파악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오전과 오후 2차례 이뤄졌던 일이다. 의심신고 상황도 검역본부와 주무 부서를 거쳐야 비로소 상황실에 알려진다.
정부는 올해 7월 긴급행동지침을 개정하는 등 대대적인 방역체계 개선책을 발표한 바 있다. 2014년과 2015년에 걸쳐 발생한 AI로 사상 최대 규모의 피해를 겪고서 만든 대책이었다. 핵심 가운데 하나가 철새 예찰 등 예방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10월 28일 야생오리에서 채취한 시료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되기까지 보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 주역도 정부가 아닌 한 대학 연구진이었다.
전문가들은 올해 AI의 전파 속도가 유난히 빠르다고 한다. 한 가축방역 전문가는 “이전에는 발병 한 달쯤 지나도 100만 마리에 불과했던 도살 처분 가금류가 올해는 발생 2주 만에 300만 마리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늑장 대응과 제대로 된 대응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한국에서 처음 발생한 바이러스(H5N6)인 탓에 대응이 어렵다”며 억울해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유전자형은 핑계에 불과하고, AI는 매년 발생하고 진화하는데 정부 대응은 발전이 없다”고 꼬집었다.
2014년과 2015년에 걸쳐 발생한 AI로 인해 정부가 도살 처분 보상금과 소득 지원 등으로 투입한 국가 재정은 무려 2381억 원이나 된다. 게다가 인체감염 위험성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AI 바이러스 문제는 국민 건강과 직결돼 있다. 책임을 떠넘기는 데 급급하지 말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당국의 모습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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