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유해성 원료를 공급한 것과 관련해 검찰의 재수사를 받고있는 SK케미칼(현 SK디스커버리)의 고위급 임원 1명이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송경호 영장점담 부장판사는 SK케미칼 임원 박모씨를 비롯해 이모씨, 양모씨, 정모씨 등 회사 관계자를 상대로 14일 오전 10시30분부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오후 11시28분쯤 박씨 1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송 부장판사는 이들에 대해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발부 사유를 밝혔다.
다만 이씨와 양씨, 정씨에 대해서는 “지위 및 역할, 관여 정도, 주거관계, 가족관계, 심문태도 등에 비추어 구속 사유와 그 필요성 및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을 재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권순정)는 지난 11일 이들 4명에 대해 증거인멸 혐의를 적용,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지난 5일 이들을 포함한 SK케미칼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를 벌인 바 있다.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이들이 애경·옥시 등에 공급한 원료의 유해성을 인지하고 관련 자료를 폐기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케미칼은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의 유해성 원료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뿐만 아니라 옥시의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 등에 원료로 쓰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등을 공급한 기업이다.
CMIT보다 유해성이 먼저 입증된 PHMG에 대한 지난 2016년 수사과정에서 SK케미칼은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될 줄 몰랐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면서 증거불충분으로 기소중지된 바 있다. 이후 SK케미칼을 제외한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 등이 실형을 확정받았다.
검찰은 SK케미칼이 가습기살균제 원료 CMIT·MIT 등이 인체에 유독하다는 실험 결과를 확보하고도 은폐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 SK케미칼이 첫 제품 ‘가습기 메이트’ 개발 중 서울대학교 교수팀에 실험을 의뢰, 원료 물질의 인체 무해성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결과에도 고의로 연구 보고서를 은폐했다는 것이다.
사건 재수사를 시작하고 지난달 압수수색 과정에서 검찰은 전직 간부의 하드디스크에서 이 연구 보고서 등의 흔적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케미칼 측은 입수한 문건의 형태가 전체 자료의 일부였던 데다 원본 존재 및 진위 여부조차 파악이 되지 않아 내부보관 해왔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시민단체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등이 독성 가습기살균제의 원료물질을 개발·유통했다며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현직 대표이사 등 14명을 고발하면서 검찰의 재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은 지난 달 SK케미칼에서 CMIT 원료를 받아 가습기살균제로 제조해 애경에 넘긴 제조·납품업체 필러물산 전 대표 A씨를 구속기소하면서 그간 논란이 돼 왔던 SK케미칼과 애경의 공소시효 문제에서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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