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으로 국민들이 받은 충격이 채 사그라지기도 전에 ‘살충제 닭’까지 등장하고 있다.
살충제 계란은 국내 양계업계에 대한 신뢰를 땅바닥까지 추락시켰고, 관계당국이 보여준 임기응변식 대응과 무능함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살충제 계란 파동의 배경에 기후변화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후가 나날이 고온다습해지면서 공장식 축사를 쓰는 산란계 농가에는 닭 진드기가 급증했고, 닭 진드기의 증가가 살충제의 오남용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살충제 계란은 기후변화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4200만여 개.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살충제 농가 49곳에서 생산됐다 폐기 처분된 계란 개수다. 이만큼 알을 낳기 위해 수백만 마리의 닭이 먹은 사료와 물, 계사를 유지하는 데 사용된 전력 등 계란 생산에는 자원이 필요하다. 이런 자원 확보 과정은 필연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수반하니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막대한 자원이 헛되이 낭비된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계란과 닭에 대한 소비자의 기피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대체 식품으로 쇠고기 돼지고기 등의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닭과 계란은 돼지나 소에 비해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기 때문에 닭과 계란을 먹는 것만으로도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셈이다.
보건 분야 국제 비영리단체인 ‘PATH’는 “계란은 좁은 경지만 있어도 생산이 가능하고 닭의 배설물은 기존의 온실가스 다배출 화학비료를 대체할 수 있는 훌륭한 친환경 비료로 재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탄소발자국이 적은 식품이다. 저렴한 값에 고급 동물성 단백질을 제공하는 ‘기적의 푸드’다”라고 소개한다. 가령, 암탉 한 마리는 연간 병아리 100여 마리를 낳지만 소는 1년에 송아지 한 마리밖에 낳지 못한다. 게다가 병아리는 송아지에 비해 섭취한 사료 흡수력이 뛰어나 빠른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성장한다. 소는 매일 트림과 방귀로만 800∼1000L의 메탄가스를 배출한다.
미국의 비영리 환경연구단체인 EWG(The Environmental Working Group) 보고서에 따르면, 닭과 계란 1kg을 생산할 때 발생하는 CO₂ 양은 각각 6.9kg, 4.8kg이지만 쇠고기의 경우 계란의 5.6배에 이르는 27kg을 배출한다. 양고기는 39.2kg에 달하며, 돼지고기도 12.1kg이나 된다. 미국과 우리는 사육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이 연구 결과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닭과 계란은 돼지나 소보다 생산성과 효율성이 훨씬 뛰어난 ‘기후 스마트’ 먹거리라는 점이다. 사실 계란의 환경, 사회, 보건적 가치는 ‘황금 달걀’에 견줄 만하다.
이런 장점을 짓밟는 문제가 여럿 존재한다. 대기업과 중소 양계장을 둘러싼 양계 산업의 비합리적 구조, 양계 농가의 열악한 여건 개선에 지원은 하지 않고 책임만 지우는 규제 당국의 무능함이 대표적이다. 실타래보다 더 복잡한 이 난제를 풀려면 언제나 값싼 계란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계란 한 알’의 역학 관계를 제대로 분석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문제의 ‘원인’인 동시에 ‘결과’로서 우리 삶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파송송 계란탁!’ 밥상머리의 값싼 달걀 한 알이라고 가벼이 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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