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된 숭례문이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신응수 대목장 등 우리 시대 최고의 고수들이 지었으니 솜씨가 모자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새것이어서 그럴까. 그런 점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숭례문 성곽이 한쪽은 길고 한쪽은 짧아 균형감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직각 삼각형 모양의, 성벽이라고도 할 수 없는 성벽의 흔적이 대칭적으로 받쳐주던 옛 숭례문이 미학적으로는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옛 한양 도성의 정문이 좌우로 날개를 펼치듯 성곽을 거느릴 때 모습을 상상하며 복원을 추진한 모양이다. 복원된 숭례문에서 남산 쪽으로 난 성곽은 길고 대한상공회의소 쪽으로 난 성곽은 짧다. 당초 숭례문 복원계획에는 대한상공회의소 쪽 도로에 차량통행이 가능한 아치 형태의 성곽을 만들어 대한상공회의소 앞까지 연장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균형은 맞았겠지만 서울이라는 초현대적 도시가 직면한 긴박한 도로 사정은 그런 ‘꿈’을 허용하지 않는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올리버 타워 구간에 서울 성곽이 일부 복원돼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옆 길에도 판석이 2m 폭으로 쭉 깔려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도 옛 성곽이 서 있던 자리다. 숭례문과 대한상공회의소 사이의 도로에도 페인트로 성곽길이 있던 위치가 표시돼 있다. 제주 올레길처럼 서울 성곽길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성곽을 몽땅 복원해 현대 서울을 꽁꽁 둘러싸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굳이 숭례문에까지 그 성곽을 실물로 복원하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 건축가가 예전에 쓴 책을 보니 “옛 도성 사람들이 모두 들락거렸던 이 문 주위를 이제는 자동차들만 돌아다닌다”는 불만을 늘어놓았다. 숭례문이 남대문으로 불리던 시절엔 이 문 주위로 빙 둘러 로터리가 있었다. 차량만 씽씽 돌아가는 도로에 둘러싸여 외로운 섬이 돼 풀풀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던 남대문이 처량해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2005년 로터리의 남쪽 부분을 막고 숭례문 광장을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2008년 바로 이 광장을 통해 숭례문에 접근한 부랑자가 숭례문에 불을 질렀다.
예나 지금이나 숭례문은 걸어가서 보는 사람보다 차를 타고 가면서 보는 사람이 훨씬 많다. 숭례문이 국보 1호라고 하지만 그 1호가 문화재적 가치로 따져 1호는 아니다. 부석사 무량수전처럼 코앞에서 본다고 해서 감동이 전해오는 그런 건물은 아니라는 얘기다. 로터리가 있던 시절 차를 타고 빙 둘러가면서 파노라마식으로 볼 때 느껴지는 감동이 더 컸다. 그것은 조선시대 사람들은 볼 수 없었던 시각(視角)에서 얻어진 것이다. 지금은 숭례문 광장과 성벽 때문에 차를 타고 가며 숭례문을 볼 수 있는 각도가 제한돼 있어 그 위용을 느끼기 어렵다.
간혹 남산의 주한 독일문화원에 가느라 숭례문 앞을 지나간다. 광화문 부근이 사무실인데도 버스나 택시를 광화문에서 타지 않고 숭례문까지 걸어 가 남산 바로 아래서 탄다. 예전 같으면 로터리를 통해 바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이 서울역으로 해서 돌아가도록 돼 있는 데다 그 우회길이 차가 막힐 때가 많아 차라리 걸어가는 게 낫기 때문이다. 가깝던 남산이 지금은 아주 멀리 느껴진다. 사라진 로터리가 이곳 도로 사정을 이렇게 어렵게 만들었다.
문화재 복원은 문화재 전문가들에게만 맡겨둬서는 안 된다. 문화재, 특히 시설 문화재는 도시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얻는다. 이런 가치를 알아보는 눈은 도시 디자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훨씬 밝다. 숭례문은 문의 기능을 잃어버린 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용적 기능을 상실한 랜드마크로서 더 아름다울 수 있다. 문 구실을 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문 구실을 하게 만들겠다는 어설픈 발상, 성곽의 문이니 성곽까지 복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숭례문을 불편하고 어색하게 만든 측면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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