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알 권리’ 주의자들의 ‘모를 의무’ 주장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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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국민의 알 권리를 외쳐 온 사람들이 북방한계선(NLL) 대화록에 대해선 유독 국민의 모를 의무를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입만 열면 국가안보에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한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사람이다. 그런 이들이 지금 ‘국익 훼손’이라는 명백하지도 현존하지도 않는 이유로 국민의 알 권리를 부인하고 있다.

국가의 일은 개인의 일과 달리 공개가 원칙이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알 권리라는 측면에서 공공기록물관리법과 달리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NLL 대화록은 공공 기록물로도, 대통령 기록물로도 볼 수 있다. 두 가지로 다 볼 여지가 있을 경우 알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공공 기록물로 볼 것이고, 국민이 아는 게 두려운 사람은 대통령 기록물로 볼 것이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한번 어떤 자료를 비공개로 지정하면 이를 열람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도록 만들어놓았다. 미국의 대통령기록물법(Presidential Records Act)은 비공개로 지정되더라도 의회나 현직 대통령이 요구할 경우 달리 그 내용을 알 방법이 없다면 관리책임자가 이를 볼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은 현직 대통령이 참고하려고 해도 아예 볼 수 없게 해놓고, 국회도 3분의 2의 정족수로 의결해야 볼 수 있게 해놓았다. 공개는 고사하고 열람하는 데만 헌법 개정 정족수가 필요하니 볼 생각조차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NLL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생겨 가지고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이 돼 있다”는 말을 했다. 표절 좀 하자면 대통령 지정 기록물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생겨 가지고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이 돼 있다. 비밀로 지정하는 것은 좋은데 필요할 때는 볼 수 있는 길도 열어 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니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몹쓸 법인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살아 있었다면 NLL 대화록 논란에 먼저 ‘까자(공개하자)’고 했을지 모른다. 유감스럽게도 전임 대통령 스스로도 열람은 할 수 있지만 공개는 못하는 게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이다.

비밀 물신(物神)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밀은 사람이 정한다. 그런데도 원래부터 비밀이어서 사람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처럼 비밀에 종속되는 현상을 물신주의라고 부른다. 정상회담 회의록이라고 영원한 비밀은 아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라도 15년 뒤에는 공개된다. 물론 2007년 정상회담은 5년여가 지났을 뿐이지만 그 사이 회담 당사자인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이 사망했다. 앞으로 크게 달라질 상황은 없다. 그렇다면 15년에 집착하지 말고 유연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국가정보원은 NLL 대화록을 공공기록물관리법에 따라 비밀에서 해제하고 공개했다. 국정원장은 이를 비밀에서 해제할 정당한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략적 의도도 없지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알 권리의 편에 서는 사람이라면 NLL 대화록의 공개 자체를 비판할 수 없다. 대선은 끝났고 국민은 대선 기간에 초관심사였던 NLL 대화록에 대해 되도록 많은 것을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김만복 전 국정원장 등은 2007년 정상회담에서 NLL 관련 논의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공개된 대화록을 보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노 전 대통령의 말처럼 NLL이 괴물이 돼서는 안 된다. 세계 역사에 땅을 주고 평화를 산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다만 사실상의 영토선으로 인식되고 있는 NLL을 무력화하려는 주장을 하려면 국민에게 동의를 얻었어야 한다. 솔직히 말해 노 전 대통령의 생각은 대화록이 공개되지 않았어도 그간의 발언과 행적으로 다 미뤄 알고 있던 것이다. 그걸 굳이 비밀의 문 뒤에 애써 숨겨야 정치적으로 연명할 수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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