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의 첫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비판 기사를 보자. “교학사 교과서는 ‘연합국은 카이로선언(1943)으로 일본에게 항복을 요구하였으나’라고 했는데 여기서 카이로선언은 포츠담선언을 잘못 썼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역사문제연구소 등이 던져준 약 300건의 비판거리 중 이것이 가장 화끈하다고 여긴 모양이다. 그러나 오류라고 주장한 바로 그 주장이 오류다. 카이로선언에는 ‘unconditional surrender of Japan(일본의 무조건적 항복)’이란 말이 들어 있다. 포츠담선언은 그 선언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이 신문은 또 “일제는 1912년 토지조사령에 이어 조선민사령 부동산등기령 등을 반포해 토지조사사업을 추진했다”는 내용을 문제 삼으면서 조선민사령과 부동산등기령은 토지조사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시행된 법령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그렇지 않다. 오늘날 민법과 부동산등기법에 해당하는 조선민사령과 부동산등기령은 토지조사를 위해 절대 필요한 법령이었다. 다만 토지조사령(8월)과 조선민사령 부동산등기령(3월)의 선후 관계가 교과서에 잘못 기재돼 있다.
이 신문의 다음 날 사설은 교과서의 대표적 오류로 “3·1운동 직후 일본이 한국인에게 한국어를 필수과목으로 배우게 했다”는 내용을 꼽았다. 교과서가 부속자료로 소개한 ‘(일제) 2차 조선교육령’에 ‘한국인에게 한국어 필수화’라고 쓴 부분을 언급한 것이다. ‘필수화’의 ‘화’라는 표현이 틀렸다. 한국어는 1차 조선교육령 때부터 필수였고 2차 조선교육령에서도 필수였으며 3차 조선교육령이 반포된 1938년까지 계속 필수로 남아 있었다. 2차 교육령에서 교육 시수(時數)가 줄긴 했지만 3·1운동 직후에도 일본은 한국인에게 한국어를 필수과목으로 배우게 했다.
교학사 교과서 비판에는 악의적인 비판도 많다. 그러나 정밀하지 못한 기술이 비판을 자초한 것도 사실이다. 트집 잡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이렇게 트집 잡힐 교과서를 써내다니 집필자들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도 수정 기한 내에 각고의 정신으로 완벽한 교과서를 만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토론이나 강연에 참석해 자기변명을 하기에 바쁘다.
마음 같아서는 교학사 교과서는 없던 것으로 하고 새 교과서 프로젝트를 기대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 상황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기존 한국사 교과서는 모두, 그것으로 한국사를 배우면 배울수록 한국이 부끄럽게 여겨지는 교과서다. 올해 수능에서 한국사 선택비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게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될 정도다. 이런 실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사를 수능 필수화하기로 했다.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융탄폭격적 비판에서 한국 현대 사학계 내 수정주의 진영의 헤게모니가 얼마나 확고한지 드러났다. 국민의 역사적 경험과 일치하는 상식적 교과서를 하나 끼워 넣는 작업이 이렇게 어렵다. 한국사 수능 필수화가 독이 든 사과임을 박 대통령도 이제는 깨달았기 바란다. 기존 교과서를 학교에서 필수로 배우는 것만으로도 해악은 충분히 크다. 그것을 달달 외워서 시험까지 보고 대학에 들어가라니 제정신인가.
기존 교과서가 문제 있다고 해서 하는 말만은 아니다. 역사라는 것이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하지 않으면 맥락조차 알기 어려운 과목이다. 그 분야에 흥미와 재능을 가진 학생들이 공부해 시험을 보면 된다. 나머지는 학교에서 필수로 배우는 것으로 족하다. 문이과 예체능계를 막론하고 국사를 필수로 시험 봐서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 나라가 선진국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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