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의 시사讀說]이종걸은 헌법공부 얼마나 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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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민주정치를 이해하기 위해 읽어야 할 3권의 고전이 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 로크의 ‘통치론’,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이다. 지난해 말 수능 국어에 칸트의 ‘판단력 비판’ 지문이 나온 걸 보고 출제자들이 제정신인가 의아했다. ‘판단력 비판’은 읽고 있으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바보가 된 느낌이지만 앞의 책들은 읽으면 똑똑해지는 느낌이 든다.

입법독재 막는 권력분립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국가를 계약론으로 설명한 최초의 책이다. 그러나 권력분립의 개념은 없다. 로크의 ‘통치론’이 처음 권력분립을 논했다. 다만 입법과 행정의 이권(二權)분립이었다. 사법을 포함한 삼권분립은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에 처음 나온다. 이 정도는 책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책을 읽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로크와 몽테스키외의 진정한 차이는 이권분립이냐 삼권분립이냐보다는 권력분립에 얼마나 철저했느냐에 있다. 로크는 입법권과 집행권의 분립에도 불구하고 입법권의 집행권에 대한 우월을 주장한 반면 몽테스키외는 두 권력 사이의 팽팽한 균형을 강조했다.

로크라면 ‘유승민-이종걸 조(組)’처럼 ‘국회는 정부가 시행령을 똑바로 만들지 않으면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몽테스키외는 “입법부는 그 만들어진 법이 어떤 방법으로 집행되고 있는지 검사할 권리를 가져야 하지만 이 검사가 어떤 것이든 입법부는 집행자의 행위에 대해 재판하는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썼다.

몽테스키외는 권력분립을 끝까지 밀고 나가 민주정치의 원칙으로 만들었다. 몽테스키외는 의회 우월의 민주주의가 입법독재로 흐를 가능성을 로마사 연구를 통해 예민하게 느꼈던 것이다. 일본 학계의 덴노(天皇)로 불렸던 마루야마 마사오가 지적했듯이 최초의 민주혁명을 일으킨 미국과 프랑스의 헌법이 채택한 것은 로크가 아니라 몽테스키외의 이론이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정도로 권력분립을 안다고 여기면 오산이다. 권력분립은 새누리당 유 원내대표처럼 경제학 박사라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새정치민주연합 이 원내대표처럼 사법시험 공부하느라 헌법책 좀 봤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서구의 대학에서 하듯이 고전을 읽고 그 함의에 대해 많은 생각과 토론을 해봐야 비로소 깨달아지는 것이다.

인문학적 소양 부족은 오늘날 대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1970, 80년대 ‘운동 아니면 고시’였던 시기에 대학을 다닌 오늘날 정치인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몽테스키외를 읽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정치지도자가 되려면 읽어 보는 게 좋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한국에 수입된 대통령제가 어떤 권력분립의 개념 위에 서 있는지 안다면 국회가 정부에 시행령을 강제한다는 따위의 발상은 할 수 없다. 유 원내대표는 이제 와서 강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조삼모사(朝三暮四)도 아니고 국민을 무슨 바보로 아나.

소양 부족한 정치지도자들

몽테스키외는 “집행권은 입법권을 저지하는 식으로 입법에 참가할 수 있다”고 썼다. 로크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말이다. 법률까지 거부할 수 있는 대통령이 행정입법권 행사에 일일이 국회의 통제를 받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것은 현재의 대통령이 맘에 드는지 안 드는지와는 상관없다. 미국에서 의회가 대통령의 행정입법을 통제하려 한 시도는 위헌 판정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에 간단히 “노(No)”라고 하면 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홉스#로크#몽테스키외#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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