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강력할 때 한국은 힘들어
文, 소프트파워 중국 바라지만 시진핑의 중국몽과 거리 멀어
일제때 한국과 고난 같이한 건 마오쩌둥 아니라 장제스
文, 충칭서 건국 백년 외쳤으나… 김구, 임시정부 건국으로 안 봐
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재외공관장 청와대 만찬에서 “전 세계는 촛불혁명을 일으킨 우리 국민을 존중하고 덕분에 저는 어느 자리에서나 대접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 방문 중 홀대론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대접받은 본인이 홀대가 아니라 환대를 받았다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냐마는 바로 본인 얘기이기 때문에 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방중 기간에 ‘중국이 번영할 때 한국도 번영했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그러나 중국인도 한국인도 공감하기 어려운 말이다. 중국인은 수많은 주변국 중 하나일 뿐인 한국과의 역사를 잘 몰라서 그렇고, 한국인은 중국과의 역사를 너무 잘 알아서 그렇다.
한나라 전성기 때 중국은 고조선에 낙랑군 등 4군을 설치했다. 수나라 때 중국은 고구려에 세 차례나 침입했다가 패해 물러났다. 당나라 때 중국은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킨 뒤 신라까지 지배하려다 나라가 기울기 시작해 물러났다. 중국이 번성할 때 한국은 힘들었다. 동서고금에 번성하는 큰 나라 옆에서 괴롭지 않은 작은 나라는 없지만 중국 외에 주변국이 의지할 다른 대국이 없던 중화권에서는 더 그랬다.
송나라는 도(道)의 주자, 문(文)의 구양수와 소동파를 배출했던 문화국이었으나 군사적으로는 거란과 여진의 침입에 시달렸다. 그때 중국과 한국은 평화로웠다. 문강무약(文强武弱)의 송나라가 문 대통령의 베이징대 연설 표현을 빌리자면 ‘중국이 주변국들과 어울려 그 존재가 빛났던’ 소프트파워의 중국이었다. 문 대통령의 연설은 이런 중화인민공화국이 돼달라는 바람을 담은 듯하나 시진핑 국가주석의 하드보일드 중국몽(中國夢)과는 거리가 멀다.
꿩처럼 타조도 천적이 다가오면 머리를 파묻는다는 사실은 미국 CNN 기자가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한 인터뷰 질문에서 처음 알았다. 타조는 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약자가 강자에게 하는 게 아니다. 니체가 잘 정리했다.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역지사지는 배려이고, 약자가 강자에게 하는 역지사지는 굴욕이다. 알아서 긴 굴욕을 배려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은 베이징대에서 마오쩌둥의 장정(長征)에 참여한 김산과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을 치켜세우는 연설을 한 뒤 충칭임시정부 청사로 향했다. 이 지점에서 역사의 중국과 현실의 중국 사이에 해결하기 어려운 충돌이 발생한다. 정작 충칭의 임시정부를 도운 것은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인데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을 거론하며 중국과 한국은 근대사의 고난을 함께 극복한 동지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은 우리에게는 고난을 함께 극복한 동지가 아니라 고난을 초래한 장본인이다.
문 대통령은 충칭임시정부 청사에서 임시정부 수립이 대한민국 건국이며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충칭임시정부의 김구만 하더라도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보지 않았다. 그가 1941년 삼균주의(三均主義)를 토대로 광복 후 건국의 청사진을 제시한 ‘대한민국건국강령’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이것이 상식적으로 쓰는 건국이란 말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건국관이다.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처럼 오도되도록 한 대표적 인물은 이승만이다. 이승만은 1948년 정부 수립 때부터 상당 기간 정부 공문서에 ‘대한민국 30년’(1948년 의미)이라는 식으로 썼다. 이승만은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자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생일을 임신 날짜에 맞추는 게 정상적일 수는 없다.
다만 문 대통령이 임시정부의 법통으로 건국을 보려 한 점은 높이 산다. 김구는 신산(辛酸)의 시절에도 임시정부를 공산주의자들의 통일전선 전략에서 지켜냈다. 그 때문에 해방정국에서 임시정부를 배격한 것은 여운형의 건준, 박헌영의 공산당 등이었다. 대다수 국민은 임정이 건국에 큰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김구가 유엔 감시하의 총선거에 동의해 놓고도 막판에 거부한 것은 유감스러운 대목이지만 그의 통일의 소원은 우리의 소원이기도 하다. 완전한 건국의 그날까지 건국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은 유보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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