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갑작스러운 통일의 교훈… 남북 경제 격차부터 해소하라는 것
비핵화에 맞춰 남북경협 필요하지만 판문점선언 비준과는 다른 문제
야당도 남북경협에는 협조해야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판문점에서 처음 만난 4월 27일, 난 독일에 있었다. 남북 정상의 만남은 독일 언론에도 크게 보도됐다. 몇몇 신문에는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손에 이끌려 군사분계선을 넘는 뒷모습이 찍힌 사진이 1면에 실렸다. 며칠 머문 것도 아닌데 한 번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주유를 하다 상점 주인으로부터, 또 한 번은 출국하면서 공항 보안검색요원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축하의 인사를 받기도 했다.
당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슈투트가르트 인근에서 건실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울리히 레너 사장과 나눈 대화였다. 그도 대부분의 독일인과 마찬가지로 남북 정상의 만남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식의 통일에 가까워진 것으로 해석했다. 다만 “왜 너희 한국인들은 통일을 하려 하냐”고 물었던 것이 특이했다. 그러면서 그는 독일이 갑작스러운 통일로 얼마나 큰 경제적 고통을 겪었는지 설명했다.
난 남북 정상의 만남이 꼭 통일에 가까워진 것으로 볼 수 없음을 그에게 설명했다. 진보 진영에서 가까운 시일 내 통일의 꿈은 접은 지 오래다. 말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하지만 실은 남북이 일단 경제적 또는 문화적 교류에 집중하고 정치적 통일은 미뤄두자는 것이다. 백낙청 씨는 최근 ‘창작과 비평’에서 진보 진영이 통일은 제쳐두고 평화만 말해도 되는 것인가 묻기도 했다. 지난 10년간 통일이란 화두는 오히려 보수 진영의 것이 돼 이명박 정부는 ‘도둑같이 찾아올 통일’에 대비하자고 했고 박근혜 정부는 ‘통일대박’을 외치기도 했다.
레너 사장은 오해를 하고 있었지만 남북이 큰 경제적 격차를 지닌 채 통일할 경우에 대한 우려는 자신이 사업가로서 겪은 통일의 실제 체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도둑같이 찾아올 통일’은 오히려 걱정이다. ‘통일’은 대박은커녕 쪽박이 아니면 다행이다. 지금 국민들 사이에 퍼져나가고 있는 남북경협에 대한 환상도 걱정스럽다. 정치적 통일을 이루기 전에 남북이 경제적인 격차를 더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통일에 따른 고통을 줄이는 길이다. 그것이 레너 사장이 내게 해주고 싶었던 말의 핵심이다.
남북경협에 찬성하지만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판문점선언은 3개 부문으로 이뤄져 있다. 비핵화란 말은 3번째 부문에서도 1항 불가침합의, 2항 군축, 3항 평화협정이 거론된 다음인 맨 마지막 4항에서 거론된다. 전체적으로 비핵화는 마지못해 거론된 느낌이다. 문 대통령 쪽에서는 그렇게나마 비핵화를 넣은 것이 다행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남북 정상이 이 시점에 만나서 이런 선언을 하게 된 비핵화라는 동기가 흐릿한 데다 평화협정 체결 등 미국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 여러 사안이 들어 있다.
대통령은 국회의 비준 없이 독자적으로 외교 행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 비준은 요구했는데 비준을 받지 못할 경우 그것을 무효로 하는 것을 전제한다. 판문점선언의 경우는 비준을 받지 못할 경우 무효가 되는지 불분명하다. 문 대통령은 무효가 된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판문점선언은 그 비준 여부를 두고 국회와 대통령이 상호 대등한 관계에 서있지 않고 따라서 비준의 요건을 갖춘 사안이라고 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이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을 추진하는 것은 판문점선언에 언급된 10·4선언의 이행 등과 관련한 예산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는 어제 비준동의안을 제출하면서 약 4700억 원에 이르는 비용 추계서를 첨부했다. 이것은 내년에만 필요한 예산이고 연도별로 모두 얼마의 예산이 필요한지는 알 수 없어 국회가 가부(可否) 판단을 하기 어렵게 돼 있다. 10·4선언 이행에는 최소 수조 원이 들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그 정도 규모의 사업안은 판문점선언에 부속해서가 아니라 따로 만들어 국회의 동의를 구하는 게 옳다.
자유한국당도 반대만 해서는 안 된다.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남북경협을 할 수 없다는 태도는 융통성이 부족하다. 일괄적이 아닌 한 비핵화가 먼저냐 남북경협이 먼저냐는 의미 없는 논란이다. 비핵화가 단계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면 비핵화의 단계마다 남북경협의 진전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양쪽 다 단계적이라면 비핵화의 보상으로 남북경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북경협이 비핵화를 선도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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