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평의회는 유럽 대륙 국가 제도… 본래 법원과 검찰 모두 통제
검찰 인사는 제왕적 대통령제 근원… 법원이 사법평의회 방식 도입하는데
검찰에도 도입하지 못할 이유 없어
대법원이 최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제출한 법원개혁안이 그다지 개혁적이지 않다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법행정에서 가장 선진적인 제도는 미국식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선호했던 개혁은 미국 연방사법회의식 사법행정인 듯하다. 그러나 대법원은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사발위)’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럽 대륙국가의 사법평의회 방식과 유사한 사법행정회의를 채택했다. 연방사법회의 방식은 법관만으로 구성되지만 사법행정회의에는 외부 인사도 참여한다.
얼마 전 국회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사개특위 대표 주자 격인 의원들이 나와 대법원의 법원개혁안이 전향적이지 않다고 일제히 평가절하하는 것을 봤다. 무책임하게 보였다. 사발위 위원을 했던 내가 보기에는 그 안은 너무 전향적이어서 오히려 사법의 안정을 해칠까 봐 걱정될 정도다.
가장 큰 비판은 외부 인사를 법관과 동수인 5명으로 하지 않고 4명으로 한 데 대해 쏟아졌다. 그러나 사발위는 외부 인사를 포함한다고만 건의했지, 외부 인사를 몇 명으로 할지에 대해서는 건의하지 않았다. 헌법 101조는 사법권이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한다. 이 사법권에 사법행정권도 포함되느냐는 논란이 있지만 외부 인사가 많아지면 위헌의 위험이 높아진다.
사법평의회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제도가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프랑스 사법평의회는 우리나라의 대법원장 격인 파기원장이 맡는 의장을 빼고 14명의 위원 중 사법관과 외부 인사가 동수로 구성된다. 이탈리아의 사법평의회는 대통령, 파기원장, 검찰총장 외에 27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3분의 2는 사법관이고 3분의 1은 외부 인사다. 외부 위원의 비중은 그 나라의 사정에 달렸다고 봐야지 외부 인사가 더 많거나 최소한 동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번역된 ‘이탈리아 현대사’(저자 폴 긴스버그)란 책에서 1958년 이탈리아에 도입된 사법평의회에서 사법관이 다수를 점한 데 대해 사법의 독립이란 측면에서 다행스럽게 평가하는 대목을 봤다.
외부 위원 수가 과반이냐 아니냐보다 더 중요한 점은 유럽 대륙국가의 사법평의회는 검찰과 법원 모두를 관할한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우리나라처럼 검사가 수사지휘권까지 갖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수사지휘도 하고 기소도 하는 검찰이 불공정할 때 오는 폐해가 법원 재판의 불공정성에서 오는 폐해보다 훨씬 클 수 있다. 따라서 사법평의회를 만든다면 검찰을 통제하는 기구를 먼저 만드는 게 순서다. 대통령을 제왕적으로 만드는 검찰 인사는 대통령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면서 법원만 외부의 간섭에 문을 여는 것은 불균형을 심화시킨다. 그럼에도 법원은 외부에 문을 여는 어려운 결정을 했는데 그런 법원만 몰아세우는 것은 비판하는 측의 균형감 부족을 드러낼 뿐이다.
검찰은 지금 검경수사권 조정에서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빼앗아 기소와 수사를 완전히 분리하는 데 저항하고 있다. 검찰의 저항에도 이유가 없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에서처럼 경찰 자치를 강화해 경찰권을 충분히 분산시킨 상태에서 경찰에 수사권을 넘겨주지 않으면 정보 기능까지 갖고 있는 경찰은 검찰보다 더한 권력집단이 될 수 있다. 또 검찰의 수사지휘권에는 경찰의 과잉 수사로부터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기능도 분명히 있다. 사법행정회의 제안이 나오지 않았으면 모르되 이왕 나온 이상 검찰에도 유사한 기구를 만드는 것이 균형에도 맞을뿐더러 섣부른 검경수사권 조정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사법행정회의를 집행 기능까지 포함하는 총괄기구가 아니라 주요 사안에 대한 심의·의결 기구로 한 데 대한 비판도 무책임하다. 총괄기구로 할 경우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번 정도 회의에 참석하는 외부 인사들이 충실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법관 인사 운영을 법관들로만 구성된 ‘법관인사운영위원회’에 맡기는 것도 문제라고 하지만 그 위원회가 사법행정회의 산하에 있는 이상 큰 문제가 되는지는 의문이다.
이번 개혁은 과거 70년간 이어진 법원의 운영 틀을 바꾸는 중대한 작업이다. 국회가 국가 삼권(三權) 중 하나인 법원의 일에 대해서만큼은 법원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정략을 버리고 더 연구하고 고민해서 모두가 훌륭하다고 여길 만한 개혁안을 만들어 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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