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칼럼]‘부패 척결’ 선언, 찬밥 데워 먹는 느낌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6일 03시 00분


집권 3년 차의 부패척결 선언… 늦은 감 있고 대상도 논란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 국면전환용이란 비판받을 것
부패척결은 이벤트가 아니다… 이번 사정은 순리에 맡기고
끊임없이 새 밥 지어 박수받길

심규선 대기자
심규선 대기자
‘부패 척결’은 어느 정권이 깃발을 들어도 박수받을 일이지만, 그렇다고 언제 시작해도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은 ‘부패 척결’조차도 성과는 늘 부분적이고, 한시적이다. 정권이 바뀌고 세월이 흐르면 그저 ‘공천 비리 사건’이니 ‘율곡 비리 사건’이니 하며 일개 사건으로 기억되거나 전(前) 정권 비리 파헤치기로 반사이익을 얻는 데 그쳤다는 평가를 받기 십상이다.

이완구 총리가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고 선언했다. 검찰도 부지런히 움직인다. 총리 담화의 내용이나 형식, 담화 후에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박근혜 정부가 사정 드라이브를 걸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왠지 가슴이 뛰지 않는다. 동시다발적으로 열심히 수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은 있지만, 정권 초의 서슬 퍼런 의지는 감지되지 않는다. ‘사건’은 보이지만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고나 할까.

한 정권이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 일은 그들이 던진 주사위처럼 6개 측면에서 살펴보면 성패나 평가를 가늠할 수 있다. 늘 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경험칙상 대체로 유효하다.

가장 먼저 정책의 수혜자를 본다. 누굴 위한 것인가. ‘부패 척결’은 국민이 수혜자다. 그래서 정권에 관계없이, 시기에 관계없이 늘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담화’나 ‘회견’ 등을 통해 알리면 즉시 ‘평상 업무’가 아닌 것이 된다. 이 총리는 “당면한 경제 살리기와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도 넓게는 국민을 위한 것이긴 하나, 직접적인 수혜자로 현 정권을 상정했다. 미사여구로 포장하는 것보다는 솔직해서 좋다.

두 번째는 대상이다. 이 총리는 구체적 척결 대상으로 방산 비리와 해외자원개발 비리, 대기업의 비자금을 적시했다. 방산 비리는 이미 정부합동수사단을 꾸려 성과를 내고 있는데 왜 굳이 숟가락을 얹었는지 모르겠다. 해외자원개발 비리는 이명박(MB) 정권을 겨냥했다는 의혹을 살 만하다. 대기업 비자금 수사도 MB 정권과 관련이 깊다는 포스코건설부터 시작한 것은 세련되지 못했다. 혹시 이런 일이 MB 정권과는 분명히 선을 긋고 정권을 재창출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현 정부의 기류와 무관하지 않다면, 그래서 보복이라 불린다면 불행이다.

세 번째는 실현성이다. 방산 비리는 성과를 내고 있고, 앞으로도 기대할 만하다. 그런데 해외자원개발 비리는 몇 명을 구속한다 하더라도 분명 뒷말이 많을 것이다. 비리는 비리라지만, 해외자원 확보는 성공 확률이 낮고 회수 기간도 길다는 논리를 완전히 깰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기업 비자금 수사도 포스코건설 정도의 비리를 몇 개 더 밝혀내지 못한다면 수사 실패다. 잘해야 본전일 가능성이 크다.

네 번째는 일관성이다. 일관성은 정권을 넘어서도 그 정책이 계속될지를 따지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번 부패 척결 선언은 그런 게 못 된다. 현 정권에서도 동력이 길지 않을 것이다. 의지가 아니라 수사 결과가 중요해서다. 대대적인 수사 체제를 계속 유지하기도 힘들다. 어느 때보다 단기 성과에 대한 부담이 크다.

다섯 번째는 시점이다. 이번 부패 척결 선언에서 가장 의문이 드는 게 바로 이 점이다. 집권 3년 차라는 것도 그렇지만, 왜 유독 지금 총리 담화를 통해 부패 척결을 선언해야 했을까. 소통에 목말라 있는 대국민 서비스라면 모르겠다.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는 초조함의 발로이거나, 국면 전환용이 아니길 바란다. 사정에 의도가 없을 순 없지만, 정치적인 의도만 있어서는 곤란하다.

마지막은 지지 여부다. 국민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분명한 것은 부패 척결 선언은 경제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이벤트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현 정부는 끊임없이 창조경제를 주창해 왔고, 공공 노동 금융 교육이라는 4대 개혁 방향도 제시했다. 구호는 이미 들을 만큼 들었다. 거기에 부패 척결 하나 더 얹는다고 해서 귀가 솔깃할 사람은 많지 않다.

이번 부패 척결 선언은 배가 고파 급한 대로 찬밥을 데워 먹겠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도 대상이 부정부패이므로 뭔가 성과를 냈으면 좋겠다. 하나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번 사정은 그냥 요기를 한 것으로 만족하고, 새 밥을 지으라는 것이다. 부패란 늘, 어디에나 존재한다. 수사를 해도 논란이 안 될, 아니 쌍수를 들어 환영할 부정부패는 차고 넘친다. 부패 척결은 몰아서 해야 할 숙제나 이벤트도 아니다. 국민은 새 밥을 좋아한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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