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대기자의 人]“벌써 대권 운운? 지역 뿌리내리기도 前 죽은 造花 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5일 03시 00분


31년 만에 대구에 야당 깃발 꽂은 김부겸 당선자

《“메시지를 거부하면 그나마 낫지만, 메신저를 거부하면 방법이 없다.” 정통 야당의 후보로서는 31년 만에 대구에 깃발을 꽂은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당선자(58·수성갑·사진). 대선주자급으로 올라섰다는 주위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하자 돌아온 게 메시지와 메신저론이다. 공약이 시원찮으면 바꾸면 되지만 인간이 부정을 당하면 설 땅이 없다는 뜻으로, 당분간 겸손 모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도 ‘정치인의 야심’을 언급했다. 14일 대구에서 이번 총선의 최고 뉴스 메이커인 그를 만나 선거기간 동안의 뒷얘기와 미래 구상,여야에 대한 평가와 주문 등을 들어봤다.

 
4·13총선에서 새누리당 텃밭인 대구 수성갑에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당선자가 14일 오후 대구에서 동아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차기 대권 주자로 급부상한 김 당선자는 자신이 당선된 요인으로 대구 시민들
이 가진 변화에 대한 열망을 꼽았다. 대구=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4·13총선에서 새누리당 텃밭인 대구 수성갑에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당선자가 14일 오후 대구에서 동아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차기 대권 주자로 급부상한 김 당선자는 자신이 당선된 요인으로 대구 시민들 이 가진 변화에 대한 열망을 꼽았다. 대구=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심규선 대기자
심규선 대기자
13일 저녁 출구조사에서 대구 수성갑의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58)가 김문수 새누리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될 것이라는 예측을 보는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제 ‘거물’이라는 수식어가 김문수 후보에게서 김부겸 후보 쪽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예상과 그가 이룬 놀라운 성취는 대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몸에 밴 겸손과 유연함에서 시작됐다는 확신이었다. 그는 결국 김문수 후보를 대파하고(김부겸 후보 본인도 표차가 그리 클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일약 대선주자급으로 뛰어올랐다.

14일 오후 대구에서 그를 만나 “당선되고 새날을 맞은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언론이 몰려오니까 비로소 당선된 것을 실감한다. 동시에 내가 안은 숙제와 내가 처리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고 했다. ‘깨어나 보니 유명해졌다’ 정도는 아니더라도 약간은 감동적인 코멘트를 기대했는데 역시 모범 답안이 나왔다. 그래도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게 그의 매력이자 장점이기 때문이다. 19대 총선과 대구시장 선거에서 떨어지고 낭인생활을 하던 그를 조찬모임이나 토론회 등에서 몇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다. 언제나 누구를 만나도 한결같이 겸손하고 진지했다. 그런 평판이 이번 선거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본인의 당선을 어떻게 자평하는지 물어봤다.

“대구 시민들의 높은 정치의식과 민심의 엄중함에 많이 놀랐다. 31년 만에 대구에서 야당 국회의원을 선출해준 역사적 선택은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오랜 기간 특정 정당이 지역을 독점해온 데 대해서도 엄중하게 평가한 것으로 본다. 김부겸 개인에 대한 지지를 넘어 변화를 선택한 대구 시민의 절박함을 생각하면 어깨가 무겁다.”

공천학살-경제낙후에 민심 폭발


그는 쌓여온 대구 시민의 분노가 폭발한 것 같다고도 했다. 다만 그가 말하는 분노에는 두 가지가 섞여 있다. ‘공천 학살’과 ‘낙후한 지역경제’다.

김 당선자는 ‘공천 학살’에 대해 “대통령 참모들은 대구의 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했다. 대구의 자존심을 짓밟았다”고 했다. 그는 본인이 그런 분위기의 덕을 봤다는 사실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낙후한 대구 경제와 관련해서는 “이제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책임을 지겠다는 정치인과 정당에 표를 주겠다는 의사표시를 확실히 한 것으로 본다”고 해석했다. 그만큼 대구 경제가 침체해 있다는 인식이다. 김 당선자는 청년 일자리도 걱정했다. 대구시가 경제자유구역 내에 추진 중인 의료, 정보통신기술(ICT)을 지원하겠다고 하는 것도 결국은 청년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청년들이 ‘끼’와 창조력을 발휘하고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 체류형 의료관광이 정착되도록 노력하겠다. 그저 하루 수술받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체류하면서 수술도 받고 치료도 하고 힐링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면 청년 일자리가 많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의 말을 들으며 ‘김부겸 국회의원’을 그저 보수의 심장에 야당의 깃발을 꽂은 정치인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여당의 텃밭에서 야당 후보가 어떻게 선거운동을 했는지도 궁금했다. TV에서 더민주당 유니폼을 입지 않은 모습을 많이 봤기에.

지역이슈 개발해 중앙과 차별화

“굳이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우려 하지 않았다. 나의 존재를 과시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2014년 대구시장선거 때부터 양극화가 아니라 다극화를 하면 공통점도 보인다고 강조했다. 또 중앙 정치와 철저히 차별화해 지역 이슈를 개발하고 지역 오피니언 리더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펼쳤다. 결론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 변화를 내가 이끌겠다는 쪽으로 끌고 갔다.”

화제가 됐던 소위 ‘벽치기 유세’에 대해서는 효과를 확신하고 있었던 듯하다.

“많은 후보가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유세를 하고 싶어 하는데 요즘은 모이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아파트에 있는 유권자를 내가 찾아 가야 한다. 처음 마이크를 들고 아파트단지의 벽을 향해 얘기했을 땐 미친 놈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한 아파트단지를 네 차례씩 돌면서 놀라운 변화를 실감했다. 창문을 열고 지지 의사를 표시해주는 분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아파트 안에 앉아 차분히 듣고 이해해 준다는 것이다. ‘두부 왔어요’ ‘양파 사세요’라는 말만 듣고 나오는 사람이 많지 않나.”

선거 기간에 어려움도 없지 않았을 터. 김 당선자는 이 질문에 조심스럽게 김문수 후보 쪽 얘기를 꺼냈다.

“김문수 후보와는 40년 지기다. 절대로 (지저분하게) 싸울 상대가 아니다. 그런데 선거에는 관성이라는 것이 있다. 마타도어(흑색선전), 이념논쟁 등이 바로 그런 거다. 색깔 공세를 받으면 당장 타격을 입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대착오적인 방법이다. 나는 선거 전부터 네거티브는 안 하겠다고 결심했다. 실제로 내 얘기를 하기도 바쁜데 상대 후보를 거론할 시간이 없다. 사람들이 나중에 ‘당신은 욕 안 해서 좋다’라고 했다. 네거티브를 하지 않은 데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김문수 후보 얘기 끝에 캠프 내에서 있었던 설왕설래도 소개했다. 주변에서 자신을 ‘대선후보감’으로 보고 있는 데 대한 의견이기도 하다.

“우리 캠프에서 상대가 대선 후보니까 만약에 이기면 우리도 대선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전략을 쓰자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절대로 그런 말들이 나오지 않도록 단속했다. 대구는 거물 정치인들에게 상처를 많이 입은 곳이다. 대구를 자기 출세를 위한 발판으로만 삼은 정치인들 때문이다. 대구는 겨우 세 번 만에 내게 큰 기회를 줬다. 벌써부터 대선 후보 운운한다면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죽을 조화(造花)가 될 수도 있다. 올해는 공약 이행에 최선을 다하겠다.”

그는 말끝에 김문수 후보의 패인 중 하나는 도지사까지 지낸 대선 후보급이라는 것을 너무 내세운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니 자신은 “내 그럴 줄 알았다”라는 말은 당분간 듣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본인의 생각일 뿐. 김 당선자도 “주위에서 그런 말(대선 후보)을 하거나 기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정치인이라면 야심이라는 것도 있게 마련”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더민주당 내에서 그의 위상과 역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서울서 큰소리? 치기 부릴 나이 아냐


“중앙당에 대한 관심을 끊은 지 2년 정도 됐다. 당내 사정을 정확하게 모른다. 서울에 가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도 듣고, 내 역할에 대한 의견도 물어 보겠다. 사람들은 내가 대구에서 승리했으니 중앙 정치로 오면 큰소리 떵떵 칠 것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도 나이가 환갑에 가깝다. 한번 해보지 뭐 하고 치기 어린 시도를 할 나이는 아니다. 신중한 행보를 하겠다.”

중앙당 얘기가 나온 김에 야당에 대한 비판이랄까, 야당의 역할에 대한 의견도 들어봤다. 사실 이 대목이 그가 다른 야당 정치인들과 다른 점이기도 하다.

“전라도당이라는 이미지는 많이 희석됐는데 사람들은 아직도 왜 우리 당을 싫어 할까.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는 인상이 강하다. 일을 되게 하는 쪽이 아니라 안 되도록 하는 데 힘을 쏟는다는 인상이 강하다. 복지를 예로 들면 여당 안에 대해 반대만 하지 말고 우리 당은 어떤 수준의 복지를 원하고, 어느 정도의 담세를 하는 게 좋은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토론할 필요가 있다.”

“안보에 대한 의혹도 야당이 극복해야 할 분야가 아니냐”고 비판적으로 물어봤다.

“햇볕정책은 야권에서 교조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단번에 정리하지 않았나. 핵과 대량살상무기를 갖기 전의 햇볕정책은 유효하지만 그 이후는 시대착오적이라고. 우리 당내에서 그런 의견을 가진 사람이 없었을까. ‘우리끼리 문화’에 너무 젖어 있다 보니 당이 경직되어 있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야당도 적극 대응해야 한다. 평화만을 최우선 가치로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지려면 좀 더 치밀하고 정밀한 논리를 갖춰야 한다.”

야당 분열에 대해서도 그는 “더민주당은 이반된 호남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형님인 더민주당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 분열해서는 정권 교체도 요원하다”고 말했다.

참패를 당한 새누리당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김 당선자는 “이번 총선 결과는 대통령이 자기 방식만 고집한 데 대해 국민이 비토한 것이다. 대통령도 이제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남은 임기 1년 10개월은 결코 짧지 않다”고 말했다.

여소야대로 되레 타협-협상 필요


그러면서 의외의 의견을 내놓았다.

“여소야대가 된 지금이야말로 정치를 복원해야 할 때다. 이제부터는 여당에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야당의 책임도 크기 때문에 가능하다. 새누리당도, 더민주당도, 국민의당도 독주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치의 본래 모습인 타협과 협상이 필요하다. 1988년 13대 국회는 4당 체제로 출범했으나 당시 최대 현안이었던 5공 청문회까지 열지 않았느냐.”

창의적인 발상이긴 하다. 그러나 13대 때는 민주정의당,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오너십이 분명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그조차 3당 합당으로 인위적인 정계개편으로 이어졌다. 다만 김 당선자의 제안에서는 어떻게 하든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갈등을 막아 보고 싶다는 절박함이 읽힌다.

반기문 대망론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한마디로 내쳤다. “훌륭한 협상가이자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국제적인 인물을 왜 진흙탕인 국내 정치에 끌어들이려 하느냐.”

어느 누구는 한국 정치가 ‘물갈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물은 갈지 않고 물고기만 갈아왔다고 비판했다. 김부겸 당선자. 그의 당선은 물고기의 진정성을 보여 주며 열심히 헤엄을 침으로써 물을 갈아 치운 사례가 아닐까. 그래서 그의 앞날이 더욱 궁금한 것이기도 하고.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대구#야당#김부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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