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응징할 방법을 찾기 전에 두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든다
우리는 진정 두려워하고 있나… 우리는 의견통일을 할 수 있나
둘 다 회의적인 지금, 북한 핵을 제거하지 못하면
우리는 ‘5강’ 속에서 살아가야
북한의 5차 핵실험 후 북한의 핵개발 수준을 깎아내리던 분위기가 일전(一轉)했다. 북한의 핵개발 수준이 상당히 높아진 데다 속도도 더 빨라질 것이라고 한다. 국가정보원, 국방부, 외교부가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말한다. 납득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그동안 정부는 북한 핵개발 정보를 왜곡하고, 입맛에 맞게 가공해서 발표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예전에는 ‘희망’을 말하고, 지금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동맹이란 것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대통령은 곧바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전화로 대북 공조를 다짐했다. 거기에 중국은 없었다. 나는 다른 점에 주목한다. 미국이든, 일본이든 평상시에는 홀대를 하다가 위기 때만 손을 내미는 것이 과연 언제까지 가능할지. 물론 미국도, 일본도 한미일 공조를 유지하는 것이 자국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조의 키’가 우리 주머니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앞으로 정부 당국은 북한 정보를 냉정하게 재단하고, 공개할 때는 정직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한다. 중국과도 척을 질 이유는 없다. 이럴 때일수록 중국이 우호적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는 중국에 과도한 기대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박일 전 외교부 군축과장, 박지영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하기 전에 발표한 ‘북핵 진단과 대응’이라는 논문의 총론에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북한의 ‘주장’을 8가지로 요약했다. 북한의 주장이긴 하지만, 북한과 우리가 생각하는 핵이 얼마나 다른지를 잘 보여주고 있어 조금 길지만 인용한다.
‘핵무기는 협상용이 아니며 핵 보유를 영구화한다. 필요한 만큼 핵무기를 계속 만들고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과 첨단 핵무기 개발을 통해 핵능력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한다.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 정밀화 능력을 갖췄고 수소폭탄 제조 능력도 보유했다. 핵 선제 타격 옵션을 포함해서 핵무기의 실제 사용을 상정한 전쟁 억제와 전쟁 수행 전략을 발전시켜 나간다. 완전한 핵보유국이 되었으므로 비핵화 대화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비핵화에 선행하여 미국의 대북한 적대시 정책을 철폐하고 북-미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미국을 핵무기로 억제할 수 있고 미국은 북-미관계가 핵보유국 대 핵보유국의 관계임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과 그 동맹국을 표적으로 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한 다양한 핵 타격수단을 개발 배치한다.’
북한은 어떤 고통도 감내하고, 그 고통을 일거에 무력화할 수 있는 더 높은 차원의 목표를 지향해 왔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게임 체인저’가 되기 직전이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순진했던 것이다. 한국은 이제 4강이 아니라, 핵을 손에 쥔 불량국가 북한을 포함한 ‘5강’ 속에서 최적의 안보 셈법을 발견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야 할 판이다.
방법을 찾기 전에 두 개의 질문이 있다. 우리는 진정으로 북한 핵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두려움을 느껴야 대비도 한다.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우리는 북한의 점진적 도발과 통일의 대상이라는 사실에 마비돼 서서히 두려움을 버려왔다. 북한이 핵 공격 징후를 보이면 주석궁 인근을 초토화하는 등 대량응징보복(KMPR) 작전을 가동하겠다고 한다. 원점 타격 개념을 확대한 인상을 주는데 글쎄다. 지금까지도 못했는데, 북한이 강력한 핵 카드를 새로 손에 넣은 마당에 누가 배포 있게 그런 카드를 쓰겠다고 결단할지 의문이다. 쓰지 못하는 카드는, 쓰겠다고 호언한 쪽만 부끄럽게 만든다.
다음 질문은 우리는 의견을 통일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또한 회의적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하나를 놓고도 온 나라가 들썩이는 마당에 무슨 국론 통일이 가능하겠는가. 지금 우리나라 최대의 적은 북한이 아니라 이념 대립이다. 이념을 앞세워 국익은 까짓 어음이고, 현금 같은 내 편만 챙기면 된다는 이기심이 정의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우리나라가 국난 앞에서는 늘 단결했다는 말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방법이 없지는 않다. 북한이 강력한 도발을 해서 한국과 국민의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희생이 따른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응징의 대상에게 오히려 응징의 파워를 구걸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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