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칼럼]새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일 05시 27분


심규선 고문
심규선 고문
대통령 선거가 꼭 일주일 남았다. 누가 대통령이 되던 곧바로 두꺼운 갑옷을 입고 부리나케 외교 전장으로 달려 나가야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새 대통령은 나라 안팎으로 핸디캡을 안고 있다. 안으로는 중요한 외교 현안에 대한 준비와 합의가 안 돼 있다는 것이고, 밖으로는 준비와 합의가 되어 있는 강력한 국가와 지도자를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지금껏 상식으로 받아들여왔던 외교 안보의 룰과 지도자상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그런 변화에 무지하거나, 그런 변화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 대통령은 미국, 중국의 지도자와 이·안·북·우(利安北友)를 놓고 격돌할 것이다. 국가의 이익과 안보 수단 확보, 북한 핵개발 저지를 둘러싼 파열음이 커지고, 한국은 누구의 친구인지를 묻는 목소리가 다시 들려올 것이다. 진전은 어렵고 더딜 것이다. 그래도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는 할 수 있다.

일본과는 어떤가. 위의 네 가지 현안이 똑같이 테이블에 오르겠지만 하나가 더 있다. ‘사(史)’다. 그 중심에 위안부 문제가 있다. 네 가지 현안을 모두 삼켜버릴 수 있다. 그래서 양국 관계는 바닥까지 내려가도 지하실을 걱정해야 한다.

지금 한일의 최대 현안은 2015년 12월 28일의 위안부 합의를 새 정부가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유력 대통령 후보들이 모두 파기나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으니 어떤 식으로든 현상변경이 불가피해 보인다.

새 정부가 ‘검증위원회’를 만들어 합의 과정을 들여다볼 것이라는 말이 들려온다. 학계 일각에서도 그런 주장을 한다. 아베 신조 총리도 2014년 ‘고노 담화’를 검증했다. 검증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한국 정부의 무리한 요구와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정권의 정의롭지 못한 선의가 야합한 결과로 몰고 가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1993년 발표 이후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외부의 공격을 막는 방패로 요긴하게 써먹던 ‘고노 담화’를, 아베라는 정치지도자가 개인적 소신에 따라 ‘의미’를 짓밟아버린 것은 국익에 반하는 행위였다. 아베 총리는 그러고도 ‘계승한다’고 했다. 누가 그 진정성을 믿겠는가.

새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검증한다면, 아베 총리와는 달리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할 것이다. 결론도 예상할 수 있다. 일본 정부의 무리한 요구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의롭지 못한 선의가 야합한 것으로서,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므로, 파기나 재협상이 불가피하다고 할 것이다.

나도 12·28합의에 만족하지 않는다. 양국 정부가 보여준 그 후의 태도에도 불만이 있다. 그러나 ‘불가능한 최선’보다는 ‘가능한 차선’을 지지한다는 소신에 따라 화해·치유재단의 이사로 참여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밝힌다. 그 연장선상에서 나는 한국 정부의 일방적인 파기나 재협상에도 반대한다.

그러나 국민의 선택을 받은 새 정부가 검증에 나서고, 파기나 재협상을 하겠다면 막을 방도는 없다. 다만, 몇 가지 고언이 있다.

검증을 하더라도 비공개로 하길 바란다. 협상에 참여했던 공무원을 카메라 앞에 세우려는, 또는 카메라 앞에 세우라는 포퓰리즘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중대한 외교 현안을 전 정권 망신주기에 이용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관련국과 제삼국에게도 불필요하게 나쁜 인상을 줄 수 있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국가는 영원하다. 우리도 줄곧 일본 정부에게 ‘부(負)의 유산’까지도 물려받아 책임지라고 요구해 왔다.

파기를 하겠다면 국제사회의 비난과 질책, 그에 따른 손해까지도 감수하겠다고 선언하고, 국민들도 이를 수용해야 한다. 우리는 옳으니까 파기해도 괜찮고, 비난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은 억지다. 대롱으로 하늘을 보는 이관규천(以管窺天)은 이제 졸업해야 한다. 한국은 이제 그렇게 할 정도의 나라는 됐다. 동시에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의 노후와 위안부 문제 전반에 관한 교육·연구·기억·위령사업 등은 우리 정부가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밝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

재협상을 요구할 생각이 있다면 ‘재협상’이라는 말 대신 ‘보충협상’ ‘보완조치’라는 말을 쓸 것을 제안한다. 일본은 파기도 수용하지 않고, 재협상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다. 내 생각이 아니라 일본의 관료, 학자, 기자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은 종종 잊고 있는데, 일본에도 국회가 있고 국민이 있다”고 말한다. 용어를 바꾼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을지 모르지만 그나마 나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일본이 재협상에 응하지 않는다면, 두 번 다시 요구하지 말았으면 한다. 위안부 합의를 구차한 합의라고 뒤엎으면서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더 구차하다. 파기나 재협상을 고려하면서 과거사와 그 밖의 문제를 분리해 ‘투 트랙’으로 대응하겠다는 것도 말의 성찬에 불과하다. 일본의 관심은 오직 하나, 새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어떻게 하는지에 쏠려 있다. 일본은 새 정부도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합의 이행 여부를 당분간 모든 사안과 연계시킬 게 분명하다. 그러니 합의는 깨더라도 다른 분야는 협력하겠다는 우리의 전략은 우리만의 전략일 뿐이다.

우리가 합의를 파기하고, 일본이 재협상에도 응하지 않는다면 위안부 문제는 합의하지 못한다는 데에 합의한 것으로 간주하고(Agree to disagree), 다른 분야에서의 협력을 모색하는 게 오히려 당당하다.

그러나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다른 것이다.

나는 새 정부가 위안부 문제는 한국 국민을 100% 만족시킬 수 있는 합의는 없으며, 지도자가 비난을 각오하고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을 인정했으면 한다. 안 되는 걸 된다고 하고, 할 수 없는 걸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시간만 끌지 말자는 것이다. 더 이상의 희망고문도, 더 이상의 회전문 협상도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없다.

다른 문제는 논쟁도 하고, 제3의 길도 제시한다. 그런데 위안부 문제만큼은 국민 여론이나 관련 단체의 주장이 100% 옳다는 전제하에 대통령을 비롯한 오피니언 리더들도 리더십을 발휘하거나 이견을 내놓을 생각조차 안 한다. 아니 못한다. 해방 이후 권력기관, 군부, 정보기관, 공산주의, 미국, 북한 등 모든 성역이 깨졌다. 단 하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친일파’라는 낙인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러다보니 위안부 문제는 한일간의 현안을 과잉대표하고 있고, 안보와 경제문제는 과소대표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하면 분명, 일본의 법적 책임 인정과 공식 사죄, 국가 배상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목표이며 정부는 그걸 관철하기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고, 박 전 대통령은 정부의 의무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굴욕적인 합의를 해줬으니 파기나 재협상은 당연하다고 반박할 것이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위안부 문제가 부상한지 26년 동안 박 전 대통령 이전의 대통령들은 도대체 뭘 했는가. 박 전 대통령도 해결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면 비난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또 묻고 싶다. 새 정부는 12·28 합의 이상의 것을 얻어낼 수 있는가. 결과를 예단하지 않고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시한을 정하지 않고 노력만 하겠다는 것은 모난 일도 안 하고 비난도 받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면 국민들도 20년이든, 30년이든 마냥 기다리는 게 맞다.

북한의 핵문제나 미국의 중재 등은 위안부 문제를 잠시 덮어두는 데는 도움을 줄지 모르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점도 상기시키고 싶다. 이 문제는 이미 국제사회의 인권이슈로 부상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한국과 일본이 합의를 하지 않으면 궁극적인 해결이 어렵다는 걸 양국 국민이 모두 인식할 필요가 있다. 외국이나 국제기구에서 자기편을 더 만들기 위해 싸우는 것은 허망하다는 뜻이다.

서울의 일본대사관과 부산 총영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의 이전 필요성조차 거론하지 못하고, 국제협약에 근거해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할 기관까지 입을 닫고 있어야 할 분위기라면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무망하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이 가장 중시하는 현안을 외면하면서 합의를 말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선진국인데다 배울 것이 많은 나라인지는 몰라도 존경받는 국가와는 거리가 있다. 과거사에 대한 그들의 태도 때문이다. 일본에게 하고 싶은 말은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자국의 문제점에도 눈을 돌리려는 태도는 의미가 있다. 일본에서도 당연히 그런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양국 언론은 예전부터 상대 국가를 비난하는데 지면과 전파를 많이 쓰고 있다. 그러는 게 효과가 없음은 요즘의 한일관계가 증명하고 있다. 앞으로는 상대 국가를 비난하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자국 국민과 정부의 시각 교정에도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게 양국 관계를 개선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며,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맞는다고 본다.

나는 양국 정부가 최근 들어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공동선언’ 20주년인 내년에 큰 틀에서 양국의 공동이익과 미래 지향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그 안에서 위안부 문제를 대승적, 포괄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봤으면 좋겠다.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그 모멘텀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일본의 관심이 크다지만, 사실은 우리의 문제다. 어떻게 될지 나도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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