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칼럼]이 좋은 계절에 허전하기만 한 자영업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고용인구중 23%가 자영업자… OECD 평균보다 7%포인트 높아
대부분 사양업종에 종사… 인터넷-유통업체에 치이고
프랜차이즈 수수료에 골병들고
가구소득 10년째 月300만원… 금융권 빚 평균 1억2000만원
노후대책은 꿈같은 얘기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고향 가는 길, 이번 추석도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다. 또 무슨 우울한 이야기를 듣게 될까. 올해도 그 둥근 달이 가슴에 난 큰 구멍 같아 보이려나.

산소를 내려와 시골 집 거실 바닥에 빙 둘러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누구는 가게 문을 닫았고 누구는 어렵고, 또 누구는 시골 빈집에 혼자 들어와 살다 추위와 병으로 죽었고…. 무거운 이야기들이 한가위 밝은 기운을 눌렀다.

자손이 많은 집안. 그러나 소수만 제대로 배웠다. 그래서 그런지 자영업 하는 사람이 많다. 크게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저 그렇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어렵다. 세월이 가면서, 또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그렇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 말했다. “경제가 좀 좋아져야지. 아주 못 살겠어.” 그 말을 받아 말했다. “양극화 몰라? 경제가 좋아져도 안 돼. 장사 잘될 일 없어.”

따져 보자. 전체 고용인구 중 23%가 자영업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6%보다 7%포인트가 높다. 12%인 일본에 비해서는 11%포인트, 7%인 미국에 비해서는 무려 16%포인트가 높다.

무슨 의미냐 하면, 생태계가 좋지 않다는 뜻이다. 즉 하나 있으면 될 치킨가게가 둘 셋 있어 서로 죽이기를 한다는 말이다. 그나마 지금은 많이 나아진 상태다. 인턴이다 시간제 고용이다 하여 일자리가 좀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 어렵다고들 하니 신규 진입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자영업자의 비율이 30%를 넘었다.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새로 생긴 일자리라는 게 대개 월 70만∼80만 원 받는 일들이다. 게다가 청년 구직자가 100만 명 이상이다. 좀 된다 싶으면 너도나도 뛰어들게 돼 있다. 결국 장사가 돼도 죽고 안 돼도 죽는 판이다.

더욱이 대부분 사양 업종이다. 동네 문방구나 책방은 인터넷 상거래로 죽고, 골목시장이나 동네 구멍가게는 대형 유통체인으로 죽는다. 프랜차이즈 어쩌고 하지만 이 역시 수수료다 뭐다 하여 골병이 든다. 무엇으로 이 흐름을 막을 것인가. 법으로든 뭐든 막아봐야 잠시다. 결국은 넘어지고 자빠지고 한다.

이러다 보니 그 형편이 말이 아니다. 자영업자의 가구소득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월 300만 원 정도다.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오히려 크게 떨어진 셈이다. 반면 같은 기간 이들 소득보다 뚝 떨어져 있던 임금근로자의 가구소득은 월 400만 원까지 올라와 있다. 역전도 보통 역전이 아니다.

제대로 못 벌었으니 빚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금융권에 지고 있는 빚은 평균 1억2000만 원으로 임금근로자들 빚 4000만 원의 3배다. 특히 1억8000만 원에 이르는 50대 베이비붐 세대의 빚은 위험수준이다. 많기도 하지만 늘어나는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동안에만 18.5%가 늘어났다. 그러고도 자영업자 부도의 절반이 이들 세대의 것이었다.

이런 판에 노후 대책인들 제대로 할 수 있겠나. 자영업자의 30%가 국민연금조차 들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도 베이비붐 세대의 가입률은 더 떨어져 있다. 이들의 ‘실버 빈곤’이 머지않아 나라를 흔들어 놓을 수도 있다.

왜 이렇게 이 힘든 자영업에 매달려 있는가? 한 조사에 따르면 90%가 먹고살자니 어쩔 수가 없다고 답했다 한다. 달리 일할 자리도 없고 사회적 안전망도 허술하니 어찌하겠나. 그대로 앉아 죽을 순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딱하다. 유럽 국가들 같으면 은퇴를 하거나, 아니면 실업상태에 머물며 재교육이나 재훈련을 받고 있어야 할 사람들까지 이렇게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까먹으며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생태계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다시 친척들이 둘러앉은 그 자리. 누가 또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대답했다. “개인이 어쩌고 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국가가 잘해야지.” 그렇다. 일차적인 책임은 국가에 있다. 일자리다운 일자리를 만들고, 재교육 재훈련 체계 강화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제대로 갖추는 일, 이 모두가 국가의 일이다.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국가? 어떤 국가 말인가. 이런저런 문제 다 내팽개치고 세월호 참사 수사권 기소권 하나 놓고 국회 문을 닫고 있는 그런 국가 말인가. 구멍은 내 가슴에만 나 있지 않았다. 둘러앉은 모두의 가슴에 나 있었다. 그 구멍 뚫린 가슴으로 하늘을 보았다. 한가위 이 좋은 계절에 왜 이렇게 허전한가.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