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고령화 문제, 성장만으론 해결 못해
복지 위한 증세 반대한다면… 시장 정의 어떻게 세울지
공동체 역할 어떻게 강화할지 대안이라도 내놔야
경기 활성화만을 되뇌는 대통령을 이해할 수가 없다
정치권이 복지 관련 증세 논의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럴 것 같지 않다. 제각기 딴소리를 하다 없었던 일로 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렇게 되어도 그나마 다행, 어설픈 합의로 조세정의와 국가경쟁력을 해칠 수도 있다.
우선 기본자세부터 문제다. 용돈 한 푼을 더 올려 받을 때도 줄일 것은 줄이면서 자기혁신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국가라 해서 다를 게 없다. 세금을 더 거두자면, 그것도 크게 더 거두자면 그만한 뭐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국가의 핵심인 정치권을 보라.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정치개혁 등 거창한 이야기는 차치하고라도 복지나 재정문제와 관련하여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일례로 시장 안에서 정의를 바로잡는 일이 그렇다. 분배와 복지는 1차적으로 시장 안에서 이루어진다. 근로자가 임금을 제대로 받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이익을 제대로 나누면 어려운 사람의 수는 그만큼 줄게 된다. 당연히 2차 분배로서의 국가의 복지 관련 역할을 줄일 수 있다.
우리의 경우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30∼40%를 받는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에서부터 모기업의 ‘갑질’에 고생하는 대리점 주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정의롭지 못한 시장 질서에 의해 희생당하고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정치권이 얼마나 잘 대응하고 있을까. 대기업과 대기업 노조 등 힘 있고 네트워크 좋은, 또 목소리 큰 사람들의 입법로비가 판치고 있는 상황을 보며 묻는 질문이다.
공동체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지역사회와 이웃 등 공동체가 살아 있고, 그 구성원들이 서로를 보살펴 나가면 국가의 재정적 역할을 그만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그렇다. 공동체를 위한 기반으로서의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를 바로잡는 일에는 관심도 없다. 오히려 잘못된 입법과 공천으로 지방정치와 지역사회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정치권을 보고 누가 세금을 더 내고 싶겠나. 누가 이들이 주도하는 증세 논의를 존중하고 따라가겠나. 결국 조세저항과 정치적 냉소, 그리고 표심과 정치적 이해관계 사이에서 헤맬 가능성이 크다.
세금을 거두기가 용이한 상황이면 그나마 작은 기대라도 할 수 있다. 이슈가 되고 있는 법인세만 해도 그렇다. 더 거둘 수는 있다. 그러나 국가 간의 조세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 속에 그 한계는 뚜렷할 수밖에 없다. 기껏해야 몇조 원 정도, 우리가 필요로 하는 수십조 원의 복지재원과는 거리가 멀다.
일부에서는 소득세 세율의 파격적 인상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최고세율 70∼80%를 주장하는 피케티를 인용하기도 하고, 경제공황 이후 한동안 최고세율 90%를 상회했던 미국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자본의 이동성이나 우리 경제의 자본흡인력 정도 등을 고려하지 않은 그저 하기 좋은 말일 뿐이다.
결국 충분히 거두어들이자면 중간계층에까지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의 경우 기업이 한 사람을 고용하면서 100이란 비용을 쓰면 그 피고용자는 80을 가지고 간다. 중위소득 근로자의 이야기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65에 비해 훨씬 높다. 그만큼 세금을 적게 낸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들의 부담이 수반되지 않는 한 OECD 평균의 복지를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묻는다. 우리의 정치권이 이 모든 것을 이겨내는 논의를 할 수 있을까? 대답은 같다. 이리저리 헤매다 포퓰리즘에 잡혀 조잡한 결론이나 내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러면 누가 이 일을 주도해야 하느냐? 도리 없이 행정부와 그 수반인 대통령이다. 그나마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5년 단임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세 없는 복지’만을 고집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는 실망스럽다. 성장이 양극화와 고령화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나 정부지출 축소를 통한 재정 확보가 어렵다는 사실 또한 분명해지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증세를 반대한다면 앞서 언급한 문제들, 즉 시장에서 정의를 어떻게 세우고 공동체의 역할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등을 바탕으로 한 대안이라도 내어 놓아야 할 것 아닌가. 아니면 복지 축소를 이야기하든지. ‘증세 없는 복지’에 경기 활성화만을 이야기하는 대통령을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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