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칼럼]걱정되는 김영란法, 국회의 대중영합주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0일 03시 00분


민간부문의 핵심 가치는 자기결정권과 자율적 운영
공직자 금품수수 처벌 당연하나 기자-사립교원 포함 이해안돼
시대 변화와 새 가치 고민없이 이 나라를 삼류로 만들려는 여러분은 도대체 누구인가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교수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교수
지난해 우리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을 기억해 보자. “시장과 자유주의가 불러올 수 있는 비정함을 우리 모두의 공동체적 노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다시 들어 보자. 무엇으로 푼다고? 우리 모두의 공동체적 노력으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

더 역사적인 말씀도 있다. 1892년 레오 13세 교황이 작성한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이다. 수십 쪽에 이르는, 긴 내부 서신에서 교황은 당시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과 힘 있는 사람들의 부조리한 행위를 하나하나 적시했다. 그리고 말했다. “국가권력 이전에 교회를 비롯한 공동체가 이 문제들을 풀어가야 한다.”

때로 우리는 시민사회와 공동체의 역할을 간과한다. 경제공황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또 국가 주도의 발전이 준 단맛에 취해 국가만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양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니다. 공동체 정신과 공동체적 노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과 같이 시장과 시민사회의 힘과 역량이 커지고, 그 결과 국가가 더이상 과거와 같은 적극적 역할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또 많은 국가가 시민사회의 공동체적 노력을 확보하는 것을 새로운 미래전략이자 강력한 시대정신으로 삼고 있다.

일례로 앞서 말한 레오 13세 공동체 정신은 ‘보충성의 원칙’, 즉 모든 문제에 공동체의 역할이 우선해야 하며 국가가 개입하는 경우에도 시민에게 가장 가까운 정부가 우선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이 원칙은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반영되어 유럽연합(EU)의 정신적 기초가 됐다. 회원국들 역시 자국의 헌법이나 법률에 이를 반영하고 있다.

무슨 말을 하기 위해 이렇게 공동체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나? 속칭 ‘김영란법’ 문제다. 그 법이 통과되는 것을 보면서 느낀 안타까움을 피력하고 싶어서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이야기하자. 공직자를 처벌하는 문제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대가성이 있건 없건 공직자의 금품 수수는 처벌하는 게 마땅하다. 문제는 민간 부문, 즉 민간 언론사 기자나 사립학교 교원 등에 관한 부분이다.

민간 부문의 핵심적 가치는 자기결정권과 자율적 운영이다. 시장 질서를 해치는 것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국가는 이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민간 부문을 민간 부문으로 두는 이유, 즉 활력이 살아난다. 또 그 위에서 공동체 의식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주인의식도 살아난다.

자기결정권이 없으면 주인의식도 없다. 규제받고 감독받는 자가 주인의식을 가질 이유가 있겠는가. 특히 윤리문제같이 감독관이 일일이 지켜볼 수 없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요령껏 챙겨 먹는 자는 득을 보고, 죽어라 순응하는 자는 손해를 본다. 주인의식뿐 아니라 정의의 관념까지 무너뜨린다. 돌이켜 보라. 순경 전화 한 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 시절, 우리의 역사가 그렇지 않았던가.

물론 자기결정권과 주인의식이 공동체 의식과 공공선으로 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충분조건은 아니다. 좋은 결과를 낳기 위해서는 그만한 환경이 조성돼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소비자 평가를 유도할 수도 있고, 각기 가지고 있는 윤리 관련 규정과 그 운영을 비교하여 공개할 수도 있다. 어찌 보면 국가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런 노력을 얼마나 했을까? 기자와 교원이, 또 언론사와 학교가 스스로 윤리 규정을 강화하도록 할 수는 없었을까? ‘보충성의 원칙’ 등은 그저 남의 나라만의 새로운 정신이어야 할까? 도대체 어떤 노력과 고민 끝에 이런 법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을까? 그것도 경찰이나 검찰의 자의적 권한 행사의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말이다.

위헌성이 있고 없고 하는 수준의 문제도, 형평이 맞고 안 맞고 하는 수준의 문제도 아니다. 접대 문화가 줄어 내수가 죽느니 하는 수준의 문제는 더욱 아니다.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하고 본질적이다. 즉, 우리의 국회가 국가를 이끌 기본적인 양식이 있느냐의 문제이다.

학생 지도를 어떻게 하는지를 보면 학교의 미래를 안다고 했다. 손쉬운 대로 매를 자주 들면 삼류가 되는 것이고,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학생들 사이의 자정 노력을 이끄는 학교는 일류가 된다고 했다.

편의주의와 대중영합주의, 짧은 상식의 소영웅주의에 시대 변화나 새로운 가치에 대한 일고의 고민도 없이 이 나라를 삼류로 만들겠다고 덤빈 여러분은 도대체 누구인가?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교수 bjkim3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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