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칼럼]어른이 겁주는 사회,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5일 03시 00분


“좋은 학교 못가면 인생 끝장”, “이것 못하면 넌 희망 없어”
끊임없이 겁과 공포로 압박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을 살아남기 위한 전사로 만들건가
부모와 갈등-공부 스트레스로 거리로 뛰쳐나간 아이들
언제까지 못본척 방치할건가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 주에 있는 컬럼바인고교에 두 명의 졸업반 학생이 총기를 들고 나타났다. 바로 잔디밭에 앉아 있던 학생 두 명을 비롯해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을 쏴 죽였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그의 다큐멘터리 ‘볼링 포 컬럼바인’에서 왜 이 소년들이 이런 일을 저지르게 됐는지, 왜 미국에서는 이러한 총기살인이 매년 1만 건 이상이나 일어나고 있는지를 묻는다.

먼저 총기 소유가 쉬워 그렇게 됐느냐고 묻는다. 흑인 등 소수인종 때문인지도 묻는다. 아닌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미국만큼 총기를 많이 소유하고 소수인종도 많이 사는 캐나다 대도시도 그래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러면 뭔가? 폭력적인 노래나 영화 같은 것 때문인가? 아니다. 이 역시 다른 나라에서도 유행하지만 미국처럼 살인이 많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면 도대체 뭔가? 그가 제시하는 답은 없다. 그러나 그의 다큐멘터리 곳곳에 표현되는 것이 있다. ‘겁’과 ‘공포’의 문화다.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억압’이다. “이걸 잘해야 돼, 아니면 넌 희망이 없어.” “이런 사람이 돼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넌 끝나는 거야.”

말로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유럽 국가에 비해 사회안전망이 약한 미국은 세상 자체가 그런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구분’과 ‘차별’, 즉 잘하는 자와 못하는 자, 가진 자와 없는 자를 엄격히 구별하고 그에 따른 차별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생활과 공부가 시원치 않았던 컬럼바인의 두 소년도 이런 겁과 공포, 그리고 그로부터 오는 압박에 시달렸을 것이다. 졸업 후 부딪칠 세상이 겁이 났을 것이고, 미래가 두려웠을 것이다. 잘 적응하지도 못했던 학교가 그나마 그들 인생의 끝이라 여겼을 수 있다.

우리는 어떤가? 사회안전망은 엉성하고 패자부활전은 잘난 사람들에게나 있다.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며, 무조건 잘나고 무조건 잘살아야 한다. 그러니 부모인들 어떻게 하겠나. “좋은 학교 가야 한다” “세상이 어떤 줄 알아, 이것 못하면 너는 끝이야” ‘겁’으로 공부를 하게 만들고 ‘공포’로 줄넘기 과외까지 시킨다. 아이들을 살아남기 위한 전사로 만드는 것이다.

순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성취 욕구를 자극하고 일탈을 막을 수도 있다. 스스로의 힘이든, 아니면 주변의 도움으로 그 압박을 이겨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실제로 많은 아이들이 오히려 이를 동력으로 삼아 성공의 길을 간다. 어찌 보면 그것이 성공한 한국인의 전형적 모습이자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압박에 많은 아이들이 행복을 잃고 있다. 올해 어린이 청소년 행복지수는 23개 주요 국가 중 19위다. 지난해까지는 6년 연속 꼴찌였다. 공부 스트레스와 이를 둘러싼 부모와의 갈등이 주요 원인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끝내 이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다. 매년 6만∼7만 명이 중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있다. 정원의 1%로, 작은 숫자가 아니다. 18세 이하의 소년범죄도 매년 9만 건 이상이 발생하는데 이들 범죄자 60%가량의 생활 정도가 ‘하류’로 분류되고 있다. 대부분이 어려운 가정 출신들이라는 말이자, 자신의 잘못만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아이들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이혼율 또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작다. 조직력도 없고 대변할 정치세력도 없다. 그래서 이들은 소위 정책적 블라인드 스폿, 즉 사각지대에 있다. 당장에 학교를 그만둔 ‘학교 밖 아이들’부터 거의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한마디로 정의롭지 못하다.

마음이 무겁다. 성공의 역사를 쓴다는 이름 아래 ‘겁’과 ‘공포’로 아이들을 압박하는 지금의 체제를 그대로 가져갈 것인가? 언제까지 아이들을 살아남기 위한 전사로 만들어야 하나? 아이들이 행복한 진정한 성공의 역사를 쓸 수는 없는 것일까?

질문은 또 있다. 압박을 이기지 못한 아이들을 향한 정의롭지 못한 태도는 언제까지 이대로 가져가야 하나? 성공한 자들만으로 성공의 역사를 쓸 수 있을까? 컬럼바인 사건이 남의 이야기이기만 할까? 아흔세 번째 맞는 어린이날 아침,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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