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칼럼]숨은 희망을 찾아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4일 03시 00분


청소년 70%가 이민 원하고 자살률 OECD 1위인 한국
정치집단은 길을 잃고 사법정의마저 무너져 내려
국가도 정치도 아닌 우리의 공동체적 노력만이
시장경제와 자유주의 비정함 극복할 희망이다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희망이 사라진 곳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이렇게 그린다.

청년 지섭이 난장이에게 가난하게 사는 이유를 묻는다. “평생 아무 일도 안 했나요?” “나쁜 짓을 많이 했나요?” 난장이가 질문마다 아니라 고개를 젓는다. 그러자 지섭이 아하, 이제야 알았다는 듯 말한다. “기도를 드리지 않았군요.” 하지만 난장이가 다시 말한다. “기도도 열심히 했어.”

아니, 열심히 일하고 나쁜 짓도 하지 않아. 기도도 열심히 해. 그런데 왜 이렇게 못살아? 지섭이 결론을 내린다. 정당한 보상도 정의도 은총도 없는 땅, 이 땅은 ‘죽은 땅’이야. “이제 우리는 이 ‘죽은 땅’을 떠나야 합니다.”

결국 난장이는 떠난다. 굴뚝 맨 꼭대기에 올라가 달나라를 향해 쇠공을 던져 올리다 어느 날 그 쇠공을 타고 하늘나라로 떠난다. 자살, 그 처참한 죽음, 그것이 주는 메시지는 처절하다. 희망이 없는 땅은 그렇게라도 떠나야 한다.

또 하나의 장면. 난장이의 시신을 들쳐 업은 큰아들에게 난장이의 딸이 울면서 말한다. “오빠는 화도 안 나?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 큰아들이 답한다. “그래, 죽여 버릴게. 꼭. 꼭.” 이번의 메시지는 두렵기까지 하다. 뒤집어라. 죽여 버려라.

이 처절하고도 두려운 메시지를 생각하며 묻는다. 우리 사회의 얼마나 많은 사람이 떠나고 싶어 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세상을 뒤집고 싶어 할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압도적 1위, 한 해 1만5000명 가까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여기에 한 취업정보 회사의 조사에서는 직장인 2명 중 1명이, YMCA연맹 조사에서는 청소년 10명 중 7명이 다른 나라로 가 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만 그 수가 빠르게 늘고 있는, 그야말로 ‘한국적 현상’이다.

“뒤집어 버리자.” 분노의 목소리도 높다. 광화문의 시위는 이제 일상이 됐고, 취업 걱정이 가득한 대학가에는 ‘민중생존’의 대자보가 다시 나붙기 시작했다. 두 차례 민중총궐기의 구호도 ‘정권 퇴진, 뒤집자 재벌세상’이었다.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연간 노동시간 2100시간, OECD 평균보다 하루 2∼3시간을 더 일한다. 그래도 빚은 매년 늘어만 간다. 몇 년 전만 해도 130∼140% 정도이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의 비율은 벌써 170%에 육박하고 있다. 일자리 찾기도 어렵지만, 찾아서 죽어라 일을 해도 빚을 내야 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국가가 어떻게 해 주면 좋으련만 이야말로 기대 난망(難望)이다.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정치집단은 길을 잃었다. 기존의 이해관계나 큰 목소리를 따라가기에 바쁘다. 정의의 축이자 힘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정의 역시 무너져 버렸다. OECD에 기록된 사법부 신뢰가 42개국 중 39위, 또 한 번 절망이다.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교황 레오 13세가 생각났다. 19세기 말 교황은 수십 쪽에 이르는 회칙(回勅)을 통해 노동자들의 처참한 생활을 사제들에게 전했다. 누가 이들을 구할 것인가? 교황이 말했다. “너와 나, 우리 모두의 공동체 정신으로 이들을 구해야 한다.” 국가가 아니었다. 공동체였다. 교황에게 국가주의는 오히려 경계의 대상이었다.

지난해 우리를 찾았던 프란치스코 교황도 같은 말을 했다. “시장경제와 자유주의 정신을 존중하되 그것이 불러올 수 있는 비정함을 경계해야 하며, 공공선을 향한 우리 모두의 공동체적 노력으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 역시 국가도 정치도 아니었다. 우리 모두의 ‘공동체적 노력’이라 했다.

가진 자일수록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쌓고 또 쌓는 세상, 그리고 그렇게 쌓은 부에 면죄부를 주고, 그들의 돈으로 궁궐 같은 성전을 짓기도 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학대당한 어린이를 위한 돈이 모이는 아름다운 사연들이 반짝인다.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재산 거의 모두를 질병과 빈곤을 퇴치하고 인간의 잠재성을 키우는 데 쓰겠다고 약속한 페이스북 창업자 저커버그의 이야기도 있다.

성탄절, 며칠이라도 공동체 정신과 공공선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자. 이를 어떻게 고양할 것인가를 고민하자. 지금도 어디선가 정의와 정당한 보상, 그리고 은총이 있는 나라를 향해 희망의 쇠공을 던지고 있을 많은 사람을 위해. 메리 크리스마스.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