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하는데 되는 일은 없다?… 문제 속에 갇혀 있는 탓
대통령이 자랑하는 ‘창조경제’… 금융개혁·자본시장 연계 없이 혁신센터만 세운다고 되나
힘은 있으나 정책능력 약한 靑, 핸들 고장난 벤츠 꼴 아닌가
‘점 9개 퍼즐(nine dots puzzle·그림)’이 있다. 동일한 간격으로 3개씩 3줄로 놓인 점 9개를 네 개의 이어진 직선으로 연결하는 문제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잘 풀리지 않는다. 이리 긋고 저리 긋고 해도 점 한두 개는 연결되지 않은 채 남곤 한다.
풀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 이 점들이 만드는 보이지 않는 상자 속에 갇혀 버리기 때문이다. 선이 이 점들을 빠져나오면 안 된다는 조건이 없는데도 무의식중에 그 안에서만 선을 그어대는 것이다. 선을 점 하나만큼 밖으로 빠져나오게 긋고, 그 다음 선도 또 그렇게 그어 보라. 문제는 쉽게 풀린다.
많은 정책문제가 이와 같다. 문제 밖으로 빠져나와야 풀리는데, 그러지 않고 그 안에서만 이리 긋고 저리 긋고 하는 경우가 많다. 수시로 바뀌는 교육제도, 그러고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학교 교육, 이런 게 다 그런 거다. 교육 밖의 학벌 위주 문화와 관행이 바뀌어야 풀리는 문제를 교육 안에서 어떻게 해보겠다고 하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정부는 없다. 때로는 몰라서, 때로는 어쩔 수가 없어 스스로를 점 안에 가둔다. 심지어 그게 아닌 줄 빤히 알면서 뭔가 열심히 하는 척, 의미 없는 선을 계속 그어대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박근혜 정부는 이 현상이 유난히 심하다. 당장에 그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 창조경제부터 그렇다. 창조가 이루어지자면 아이디어와 기술, 그리고 열정이 있는 곳으로 돈이 흘러가야 한다. 융·복합 사업을 지원하고 혁신센터를 여는 것 같은 산업정책이나 과학기술정책을 넘어 금융개혁과 자본시장 육성 쪽으로도 선을 주∼욱 그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돈은 여전히 담보 있는 쪽, 그리고 크고 잘난 쪽으로만 흐르고 있다. 정책적 노력이 없지는 않았지만 변화의 조짐은 없다. 선을 제대로 확 빼주지 못한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무슨 ‘창조’가 얼마나 잘 이루어지겠나.
이화여대를 뒤집어놓은 평생교육의 문제도, 나라를 분열시키고 있는 사드 문제도 마찬가지다. 평생교육은 대학을 어찌 하겠다고 나서기 전에 산업현장을 평생교육의 장으로 만드는 것을 생각했어야 했다. 맥도널드의 ‘햄버거 대학’이나 애플의 ‘애플 대학’처럼 말이다. 그랬으면 산업현장과 대학이 경쟁하는 구도 속에 대학과 그 구성원이 스스로 나설 수도 있었다.
사드 문제 역시 중국을 건드릴 수밖에 없었다면 우리의 산업과 기술혁신 역량이 어느 수준에 있는지, 또 이를 어떻게 높여 중국이 우리를 내칠 수 없도록 할 것인지 등에 대한 분석과 대안이 따랐어야 했다. 그랬으면 중국에 대한 불안과 반감 모두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가장 큰 이유는 점 밖으로 선을 그을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교육부는 산업현장 쪽으로 선을 그을 수가 없고, 국방부는 산업정책이나 과학기술정책 쪽으로 선을 그을 수가 없다. 이들보다 큰 틀에서 선을 그을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 주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결국은 청와대가 해줘야 하는데 이 청와대가 문제다. 힘은 있지만 정책 기능에서는 약체다. 핸들이 고장 난 벤츠 같다고 할까. 큰 그림도, 또 이를 바탕으로 과감하게 선을 그어 나갈 ‘정책 실세’도 보이지 않는다. 정작 각 부처가 알아서 해도 되는 일에 간섭하는 ‘쪼가리 권력’ 행사나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 결과 정부 전체가 ‘9개의 점’이 만드는 상자 안에서 의미 없는 선을 긋고 있다. 가계부채 대책이라고 해봐야 그게 그거고, 산업구조 조정을 한다고 해봐야 그게 그거다. 이리 긋고 저리 긋고 하지만 ‘창조경제’를 위한 점들도, ‘문화융성’을 위한 점들도 다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저 구호로만 허공에 떠돈다.
아니라고? 많은 일을 했다고? 그러면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경쟁력 있은 혁신기업은 얼마나 많아졌고, 국민은 얼마나 안전해졌으며, 가계부채는 얼마나 줄었고, 지식노동자는 얼마나 많아졌는지. 얼마나 많은 선을 그었느냐가 아니라 그 선들이 점들을 제대로 연결하고 있는지를 물으라는 말이다.
1년 반 남은 시간, 이제 와서 뭘 할 수 있겠느냐 하지 마라. 시간이 없으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 성찰의 기록이라도 남겨라. 알 수 있나. 그 성찰의 기록이 우리 정치와 행정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선이 되어 이 나라를 새롭게 창조하고, 또 융성하게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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