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중시하는 정책일수록 결사반대하는 정치풍토… 차기정부라고 달라질 리 없다
“패권정치는 반드시 실패” 2005년 대연정 제의는 엄청난 고민의 산물
국가운영체계 그대로 둔 채 대통령 바꿔 나라 달라지겠나
“내가 이걸 꼭 추진하고 싶어 한다고 하지 마세요.”
중요한 정책 사안을 놓고 노무현 대통령은 농담 반 진담 반 그렇게 말하곤 했다. 대통령이 하고 싶다고 하면 그날부터 시비가 걸리고, 그래서 일은 더 안 되게 되어 있다는 말이었다. 농담 속에 진담이 있다고, 가슴이 아팠다.
흔히들 대통령이 ‘제왕적’ 힘을 가졌다고 한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높은 정치적 위상에 그 끝이 어디인지도 모를 정도의 인사권과 행정권과 재정권을 가지고 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원하는 자리에 앉힐 수도 있고, 크고 작은 기업을 죽이거나 살릴 수 있다.
하지만 산업 구조조정과 노동개혁 등 이 나라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들을 생각해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시장과 시민사회의 힘과 조직력이 크게 성장한 데다, 하나같이 생살을 도려내야 하는 과제들이다.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에 이리저리 밀리다 보면 어느새 레임덕이 된다.
그나마 그것도 과제를 과제로 보고, 그래서 시도라도 해 보는 경우이다. 대통령에 따라서는 저급한 정치에 함몰된 채 민심을 따라가느라 허겁지겁,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몇 년의 세월을 보내기도 한다.
다음 대통령이라 하여 다를까. 후보들은 표를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고 여소야대의 구도는 이미 만들어져 있다. 단언컨대 과제는 쌓여갈 것이고 그렇게 해서 생긴 국민의 고통과 분노는 세상을 다시 한 번 화약고로 만들 것이다. 또 한 사람의 불행한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대통령에게 더 큰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중임 제한을 철폐하여 권력 기반을 강화하고, 시장과 시민사회 그리고 정치권에 대한 지배력을 크게 키우는 것 등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안다. 이게 답이 아니라는 걸. 권위주의 체제의 아픈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마당에 국민이 이를 용납할 리 없다. 또 이런 정치에서 그런 힘을 가져도 좋을 만한 좋은 대통령이 나오기도 어렵다. 결국 더 큰 힘을 가진 대통령은 더 큰 저항과 반대를 부르게 될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대통령의 권한과 책임, 그리고 역할을 오히려 줄이는 방법이다. 연정(聯政), 즉 대통령이 다른 정당이나 그 지도자들과 함께 행정부를 이끌어 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대통령의 역할은 줄겠지만 정부 전체의 집합적 리더십은 강화된다. 문제를 풀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된다는 말이다.
연정의 더 큰 기능은 정치권 전체의 과제 인식 능력을 키우는 데 있다. 연정 참여자들이 권한과 함께 책임도 공유하기 때문이다. 어떤 과제에 대해 책임이 없으면 그 과제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정치라 하여 다르지 않다. 대통령 혼자 책임을 지게 되면 그 이외 정치주체들의 과제 인식 능력은 그만큼 떨어지게 된다. 연정은 이런 문제를 완화시켜 준다.
이야기를 줄이자. 단일 정치집단의 단독 집권은 성공하기 어렵다. 특정 집단이 권력을 배타적으로 행사하는 패권정치는 더욱 그렇다. 반드시 실패하게 되고, 또 그만큼 나라를 어지럽히게 된다. ‘친박(친박근혜)’ 어쩌고 하던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용납해서는 안 된다. 다시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난다. 많은 과제들과 씨름했고 그로 인해 많은 고통을 앓았다. 그러면서 이 과제들을 제대로 풀 수 없는 잘못된 국가 운영체계에 대해 엄청난 고민을 했다. 수시로 한탄했다. “학자도 언론도 왜 이 문제에 대해 고민이 없나.”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수없이 그랬다.
그러다 대(大)연정을 제안했다. 길고 긴 고통과 고민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패권정치와 한풀이 정치, 그리고 진영논리가 판치는 상황에 이게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정권 교체가 가시화된 상태에서 상대 정당의 지도자는 수용을 거부했고, 지지자들은 엄청난 비판과 비난을 쏟아부었다. 결국 대통령 혼자만의 독백이 되고 말았다.
임기 말에는 다음 정부를 위해 여소야대의 문제라도 해소해 보고자 했다. 그래서 제안한 것이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원포인트 개헌, 하지만 이것마저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결국 그는 스스로의 정치를 ‘실패’라 규정하며 임기를 마쳤다. 그리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고민하고 고통을 앓았던 이 잘못된 국정 운영체계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가. 그의 이름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들, 특히 지금의 이 모든 어려움을 구조나 체계의 문제가 아닌 사람의 문제로만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노무현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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