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군에 있는 하엽정(荷葉亭)은 삼가헌 박성수의 별당이다. 삼가헌을 지은 그 이듬해인 1770년 택지의 서쪽에 네 칸짜리 파산서당(巴山書堂)을 지은 것이 그 처음이다. 가르치기 위한 집이라기에는 강학공간이랄 것 없이 대청마루가 너무 협소하다. 아마도 스스로의 공부를 위해 지은 집일 것이다.
조선 집은 일단 집을 앉히기 위한 기단을 쌓아야 한다. 이 기단에 쓸 흙을 다른 데서 가져올 수도 있지만 이 집에서는 마당을 파서 기단을 쌓았다. 그리고 그 파낸 자리에 물을 담아 연못을 꾸미고 연꽃을 심었다. 연못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전통적인 세계관을 그대로 답습해 가로 15m, 세로 21m의 네모난 못을 만들고 가운데 동그란 섬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수미산이다.
파산서당이라는 이름은 이 건물이 지금의 계명대가 있는 자리의 파산을 조산(祖山)으로 바라보게끔 자리 잡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자리에 솟은 파산을 조산으로 삼고 그 먼 거리의 상징을 당호로 삼은 옛사람들의 치밀함과 넓음에 감탄한다.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에도 나오듯이 향기는 멀수록 맑은 법이다. 한여름의 연못에는 연꽃이 그득하고 그 향기는 이 집의 곳곳에 스몄을 것이다. 그래서 하엽정의 방 이름은 영향(迎香)이다. 향기를 맞아들이는 방이다. 연꽃은 여름 내내 피는 꽃이다. 바다에 있는 어떤 섬들은 파고에 의해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하고 운해에 의해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하지만, 하엽정 연못의 수미산은 한여름 연꽃이 피면 사라졌다가 연꽃이 지면 나타난다. 그만큼 무성한 연꽃들이 여름 내내 피어 있다.
하엽정의 서쪽은 낮은 산으로 그 산 하나만 넘으면 유장한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박성수의 후손들은 아마도 이 물자리를 경계해 우백호를 좀 보강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1874년 파산서당의 서쪽 끝 칸에 누마루를 내어 달고 이름을 하엽정이라고 붙였다. 원래 방의 높이 보다 한 자 이상이 높게 계획되어 연못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비로소 백호가 보강되고 연못과 집이 하나가 되었다.
네모난 연못은 땅을 상징하고 동그란 섬은 천상계를 상징한다. 그 연못에 집이 비치니 이 집은 현실계에 있으면서도 천상에 존재하는 집이다. 아직 연꽃이 피지 않을 때는 붉은 배롱나무 꽃잎이, 가을의 문지방 너머에는 단풍나무 잎들이 이 천상의 집 수면을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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