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암 남사고(格庵 南師古)는 영남의 길지로 조령과 영천을 꼽았다. 흔히 영천을 일러 이수삼산(二水三山)의 고장이라고 한다. 두 물은 자현천과 고현천을, 세 산은 보현산 마현산 자산을 가리킨다. 서거정이 조양각이라고도 부르는 영천의 서세루에 올라 “흰 구름 누런 학은 몇 번이나 돌아왔던가/두 강물 세 산이 차례로 펼쳐졌네”라고 읊은 데서 비롯되었다.
영천은 그만큼 물 좋고 산 좋은 지역이다. 이런 영천에 또 삼대 길지(吉地)로 꼽히는 곳이 있다. 하나는 음택이고, 둘은 양택이다. 음택은 영천댐 위의 기룡산 기슭에 있는 영일 정씨(迎日 鄭氏)의 묘역이다. 양택지는 매화 잎이 땅에 흩어져 그 향기를 더한다는 매화낙지(梅花落地)형의 삼매리 매곡리의 매산고택과 흰 학이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이라는 백학포란(白鶴抱卵)형의 선원마을이다.
그러고 보니 세 곳 다 영일 정씨의 소유다. 이 마을의 길 이름이 잘 말해주듯이 영일 정씨는 고려 말의 학자 포은 정몽주를 길러낸 고려 때부터의 명문이다. 매산고택은 매산 정중기(梅山 鄭重器·1685∼1757)가 어느 해 창궐한 천연두를 피해 원래 살던 선원동에서 이곳으로 집을 옮기면서 짓기 시작해 그 둘째 아들인 정일찬이 완성했다. 비록 여러 채가 없어졌지만 남아 있는 채들의 짜임새 있는 구성이 원래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주봉인 기룡산에서 이어진 뒷산은 매화 가지가 축 늘어져 있는 꼴이고, 그 가지에서 땅에 떨어진 꽃의 수술에 해당하는 자리가 바로 매산고택이다.
매산고택에서 바라다 보이는 삼매리의 계곡 앞쪽의 산은 매화를 희롱하는 나비의 날개처럼 삼각형으로 생겼으니 참으로 시적인 입지다. 대문도 길에 면하지 않고, 길에서 살짝 들어와 있어 계곡 앞의 나비가 입의 흡수관으로 꿀을 탐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계곡이 동남에서 서북쪽으로 이어져 집은 자연히 서남향을 하고 있고, 대문을 들어서면 강한 수평성을 띤 중문이 있는 아래채가 시원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사랑채는 대문에서 중문 방향과 평행하게 자리해 독립적인 마당을 갖고 있다. 뒷산에서부터 내려오는 경사지에 자연스럽게 채들을 앉혀 놓아서 그 높낮이가 집을 정적인 가운데서도 살아있게 만든다.
그러나 정작 이 집에서 중요한 것은 매화낙지형의 풍수적 꼴을 갖추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배치된 다른 건물과의 관계에 있다. 매화가 지는데 한 송이만 질 리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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