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사교육 없애는 대입’ 길은 있다

  • 입력 2009년 3월 22일 20시 42분


나는 ‘노무현 대학입시’ 때문에 머리에 쥐가 났던 학부모다. 지금 대학 2학년인 아들은 고교 2학년 초부터 자퇴를 하겠다고 성화를 부렸다. 자립형사립고 내신으로는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입학이 불가능하니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치르겠다는 것이었다. 그 학교에 함께 입학한 360명 중 70여 명이 3학년이 되기 전에 학교를 떠났다. 이현구 교장은 졸업식에서 “일주일에 서너 명씩 자퇴학생이 나올 때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며 울먹였다.

나는 “노무현 정부 임기가 서너 달밖에 안 남은 시점에 실시되는 입시라 사립대학들이 교육부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내신위주 입시’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자퇴를 말렸다. 아들은 다행히 2008학년도부터 입시제도의 큰 틀을 바꾼 KAIST에 지원해 합격했고 고교 졸업장도 받을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대학입시에서 편 가르기를 했다. 수능시험의 변별력을 없애고 내신 비중을 높여 특목고와 상대적으로 학력이 높은 지역 학생들을 역차별했다. 이렇게 해 고교 평준화를 이루고 나아가 대학 평준화까지 달성하겠다는 무리수였다.

고려대가 2009학년도 입시에서 내신 성적 4등급 이하인 특목고 출신들을 우대했다고 해서 전교조 계열 시민단체와 일부 언론이 연일 공격하고 있다. 고려대가 입시요강 발표 때 표준편차를 이용한 내신 계산법을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은 것은 페어플레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학이 우수한 학생들을 역차별하는 전교조이념형 입시규제를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고 몰매를 때릴 일만은 아니다.

점수 위주 내신·수능 사교육 조장

내신등급이나 수능점수 1, 2점 차로 합격 불합격이 갈리는 입시제도는 사교육 수요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는 내신을 강화하면 사교육이 맥을 못 출 것이라고 했지만 내신과외가 되레 극성을 부렸다. 내신은 같은 학교 울타리 안에서만 경쟁하기 때문에 급우 간에 노트도 빌려주지 않는 인성 황폐화까지 불렀다.

학원에서는 수능 1, 2점 더 받고 내신 등급을 올리는 기술을 가르쳐준다. 사교육은 심하게 말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교육이다. 사교육비가 전체 대학재정의 3∼5배라는 추정치도 있다.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은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다.

점수가 유일한 기준이 되는 입시로는 사교육을 없애기 어렵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들어가려면 일종의 수학능력 테스트인 미국대학수학능력시험(SAT) 성적이 2400점 만점에 2200점은 돼야 안심할 수 있지만 만점 가까운 학생이 떨어지기도 하고 1900점대로 합격하는 경우도 있다. 하버드대 입시에서는 만점을 받고 떨어진 학생도 있다. SAT 외에 창의력, 독립성, 대인관계 능력, 봉사정신, 논리적 사고능력을 종합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서남표 KAIST 총장은 테뉴어(정년보장) 심사를 엄격히 해 교수사회의 철밥통을 깨는 개혁을 했다. 이제 그는 사교육을 받으면 불리해지는 입시제도를 만들어보겠다고 나섰다. 이 대학은 2010학년도 전체 정원 850명 중 150명가량을 일반고에서만 선발할 계획이다. 입학사정관들이 전국 학교를 돌며 학생과 담임교사를 면접해 1000명의 지원자를 300명으로 압축하고 다시 심층면접을 거쳐 150명을 확정하는 방식이다. 정원의 대부분인 700명은 서류전형과 심층면접만으로 선발한다.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한 수험생들은 하루 종일 그룹토의, 영어 자기소개, 심층면접을 한다.

창의력 있는 미래형 인재 찾으라

대학들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입학사정관제도 도입을 발표하고 있다. 대학입시가 유행으로 흘러서도 안 되고, 미국식 제도가 최고일 수도 없다(뉴욕 월가에서 촉발된 금융위기를 보더라도 미국식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다만 대학들이 사교육을 받지 않은 미래형 인재를 찾아내기 위해 전형요소를 다양화하는 노력은 배워야 한다. 학교 현장에 나가 학교장이 추천하는 인재들을 직접 살펴보고, 에세이도 쓰게 하고, 그룹토의도 시켜보고, 심층면접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미래세대의 경쟁력 배양을 위해서도 그들을 한밤의 학원 순례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고교시절에 상상력과 창의력이 생기도록 문학작품과 고전을 읽고 예술을 감상하며, 사회봉사와 취미활동도 할 수 있는 여유를 줘야 한다. 학교차를 무시한 내신과 수능 성적만으로 줄을 세워놓고 뒤에서부터 자르는 입시제도를 바꿔볼 때가 됐다. 물론 대학의 자율이 대전제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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