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동작동의 화해

  • 입력 2009년 8월 23일 19시 46분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지역주의는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현상이 아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복을 벗고 출마한 제5대 대통령 선거(1963년) 결과는 동서(東西)가 아니라 남북(南北)으로 분화(分化)됐다. 윤보선 후보는 서울 경기 강원 충북 충남 다섯 곳에서 승리했다. 반면에 박 후보는 경북 경남 부산 전북 전남 제주 여섯 곳에서 이겨 15만6000표 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특히 박 후보는 전남북에서 117만4000표를 득표해 호남에서만 윤 후보를 35만 표 차로 눌렀다. 박 후보의 당선에 호남이 크게 기여한 것이다.

박정희 시대의 마지막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1971년에는 호남 출신 김대중(DJ) 후보가 출마하면서 동서 대결 현상이 처음으로 나타났다. 박 후보는 경남북과 부산에서 261만 표를 얻어 102만4000표를 얻은 김 후보를 158만6000표 차로 눌렀다. 반면에 박 후보는 전남북에서는 77만8000표를 얻어 141만 표를 얻은 김 후보에게 63만2000표를 졌다. 그러나 부산의 투표 결과를 보면 지역주의 투표 행태가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다. 부산에서는 박 후보가 38만6000표를, 김 후보가 30만2000표를 얻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신민당 경선 결과에 승복해 DJ의 지지연설을 하고 다닌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1972년 유신 선포와 함께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사라졌다가 15년 만인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부활됐다. 1987년 대선에서 양김(兩金)은 단일화를 이루지 못해 함께 패배했고, 동서 대결구도를 완화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다.

1960년대 지역 몰표 없었다

서강대 강정인 교수는 “1987년 대선에서 양김의 분열은 참을성 많은 역사의 눈을 통해 볼 때, 군부정권이 점진적으로 철수할 수 있는 퇴로를 평화적으로 확보함으로써 민주화 과정을 비교적 순탄하게 이끈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해석했다. 3당 합당을 통해 여당의 양자(養子)로 들어간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군부정권의 잔재를 청산함으로써 민주화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강 교수의 결과론적 분석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양김의 분열은 이후의 모든 선거에서 지역주의 대결구도를 고착하는 폐단을 낳았다. 이때 시작된 영호남과 충청의 지역당 구도는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 DJ는 최대의 정적(政敵)으로서 박해를 받았고, 호남은 5·18 민주화운동 때 피해를 당하며 저항적 지역주의가 강화된 측면이 있다. 호남인들도 DJ의 집권을 통해 어느 정도 한을 풀었다. 이제는 어느 쪽이나 여유를 갖고 상대를 바라볼 일이다. 한국이 세계 10위권 무역대국으로 성장한 글로벌 시대에 남북한을 합해도 중국의 광둥 성이나 산둥 성보다 인구가 적은 나라에서 내각의 출신지역 비율이 뉴스가 되는 것은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동서가 대결하는 지역주의 투표 행태가 나타난 것은 한 세대 정도 흐른 셈이지만 보수 진보 갈등이 지역주의 구도와 일부 겹치면서 고착될 우려가 있다. 이것은 한국정치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바람직스럽지 않다. 지역대립 구도의 중요한 축이었던 DJ가 역사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맞았다.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야 뿌리 의식을 평생 싸안고 살 수도 있겠지만, 세대가 바뀌면서 인구의 절반을 차지한 수도권 주민의 출신지역 의식은 점차 희석돼갈 것이다. 설이나 추석 때 귀성 행렬도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양상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으로 김 전 대통령이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에 이승만 초대 대통령, 박 전 대통령과 이웃으로 묻혔다. 좌파세력 가운데는 이 초대 대통령, 박 전 대통령의 허물만 보고 치적에 눈감는 사람이 많다. 극우 세력 중에는 민주화운동 세력의 희생과 기여를 평가 절하하는 이들도 있다.

서울현충원서 만난 세 대통령

이 초대 대통령이 당시 국제정세를 꿰뚫어보고 유엔 감시 아래 선거가 가능했던 남한만으로 단독 정부를 수립하고 미국의 힘을 빌려 공산주의를 막아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보릿고개를 없애고 세계가 한강의 기적이라고 찬탄하는 경제발전의 토대를 닦았다. 김 전 대통령은 독재와 맞서 싸우며 민주화를 설계했고 남북 화해의 길을 조성하려고 노력했다.

동작동에는 전쟁에서 이 나라를 구하고 가난에서 일으켜 세워 코리아를 세계로 뻗어나가게 한 호국영령들이 함께 잠들어 있다.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의 혼령이 동작동에서 만나 화해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것은 동서의 화합이고,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화해이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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