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이재명 ‘게임 체인저’냐 ‘페이스메이커’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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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박스권에 갇힌 문재인의 초조한 횡보
촛불 강성발언으로 틈새 파고든 이재명… 혹독한 언론 검증 버텨낼까
조기대선은 다자구도에서 합종연횡으로 접전 벌어질 전망

황호택 논설주간
황호택 논설주간
 문재인은 탄핵이라는 대형 호재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치솟지 못하고 20% 선의 박스권에 갇혀 있다. 문재인이 횡보(橫步)하는 사이 탄핵풍을 타고 경기 성남시장 이재명의 지지율이 턱밑까지 치솟았다. 문재인은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중도 쪽으로 다가가는 발언을 하다가 이재명이 강성 발언으로 인기를 끌자 집토끼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핸들을 다시 왼쪽으로 급격하게 꺾었다.

 “헌재가 탄핵을 기각하면 혁명밖에 없다”라는 문재인의 발언은 이재명이 “국민이 원하는데 기각하면 헌재가 쓸려나갈 것”이라는 말을 한 지 한참 지나 나왔다. 이재명의 인기 비결은 문재인이 신중한 모드로 주춤하는 틈새를 치고 들어가는 강성 발언이다. 이재명은 박근혜 대통령의 퇴임 후와 관련해서도 “청와대에서 나오는 순간 수갑을 채워 수감할 것을 요구한다”고 세게 나갔다. 
 

 이재명은 탄핵사태 전까지만 해도 판교 정보기술(IT) 기업들과 부동산 경기로 지방세수가 늘어나 청년과 노인들에게 돈을 펑펑 주는 수도권 변방의 포퓰리스트 시장 정도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를 만나보면 튀는 언행이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전략이며 사회과학적 공부가 꽤 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박 대통령을 대선 후보 때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원죄를 지닌 언론이 이번에는 대선후보들의 껍데기를 벗기려고 덤벼들 것이다. 문재인은 ‘재수(再修) 피로감’과 ‘안보 불안감’이 약점이지만 이재명은 본격적으로 검증 무대에 서 본 적도 없다.

 그는 경북 안동 산골의 화전민촌에서 자라 초등학교를 마치고 성남으로 가족과 함께 이사 왔다. 공장 일을 하며 검정고시로 중고교 교육과정을 마쳤다. 부산상고를 나와 사법시험에 합격한 노무현보다도 훨씬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노무현 박근혜에게 질린 유권자들 중에 ‘정상적인 환경에서 성장하고 교육을 밟은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검정고시 흙수저는 대중정치인에겐 자산이다. 그는 “지금 같은 집단교육은 대량생산시대에나 맞는다”고 말한다. 

 이재명가(家)의 7남매 중 평지돌출(平地突出)한 사람은 공인회계사를 하는 셋째 형과 그 둘뿐이다. 그가 중앙대 법대에 다니며 받은 장학금을 나누어 형의 학비를 보탰다. 그 형이 롤모델이자 후원자였던 동생을 공격하고 있다. 그는 “슬프고 미안하고 아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시장에 당선되자 셋째 형이 시장 행세를 해, 공무원들과 접촉을 차단하니까 어머니를 찾아가 쌍욕과 폭행을 했다는 해명이다. 셋째 형수와 쌍시옷 욕설이 오간 녹음파일이 생성된 사연이다.

 배우 김부선이 그를 계속 ‘디스’ 하는 사연도 검증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방을 아무리 읽어봐도 개운하지가 않다. 

 그의 발언과 정책을 보면 분명히 진보좌파가 분명한데 “나는 보수주의자, 실용주의자”라는 말을 해 헷갈린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성사시킨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에 대해 “매국질, 친일매국의 피는 못 속이는 모양”이라는 SNS 글을 날렸다.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같은 야당 후보들도 사드와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을 비판하지만 그가 더 눈길을 끄는 건 거침없는 독설 때문이다.

 제2차 대전 때 미국 영국은 나치 독일을 무찌르기 위해 소련의 스탈린과도 손을 잡았다. 북한 핵을 감시하기 위해 일본이 첨단무기를 통해 얻은 정보를 활용하는 것조차 친일로 매도할 양이면 보수 실용주의자라는 말은 안 하는 것이 좋겠다.

 이재명이 대선의 흐름을 바꿔놓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로서 역할을 하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지만 마라톤에서 선두그룹을 끌어주는 페이스메이커(pacemaker) 역할에 그치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재인이 2015년 민주당 대표가 되고 나서 영입한 온라인 당원 10만 명의 위력도 만만찮을 것이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이재명이 치고 올라오는 속도가 가파르지만 최종 승자가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경선에서 진다면 깨끗이 문재인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차기를 도모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그러나 문재인에 대한 호남의 비토가 여전하고, 친노(친노무현) 중심의 결속력은 탄탄하지만 확장성이 떨어진다. 문재인이 이재명 바람을 잠재우더라도 여야의 분열에 따른 다자 구도 속에서 1997년 DJP 같은 합종연횡이 벌어진다면 이번 대선도 결국 52 대 48로 가면서 누구도 압도적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접전이 펼쳐질 것이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
#문재인#이재명#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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