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때 ‘동물원’이라는 대중음악 그룹을 선망했다. 지하철역 음반가게에서 사들고 돌아와 방문 닫고 허겁지겁 벗긴 3집 앨범 카세트테이프 비닐 포장의 감촉, “다음 정류장은 시청, 시청입니다”로 시작한 첫 트랙 첫 소절의 두근거림이 아직 또렷하다. 가사를 받아 적어 어림잡아 두들겨 맞춘 코드를 붙인 기타 악보 묶음이 골방 책꽂이 맨 아래 칸에 지금도 꽂혀 있다.
25년이 지났다. 야근을 마치고 지하철역 플랫폼에 섰다. 머리 위 스크린에서 케이블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의 새 시즌 예심 홍보영상이 흘러나왔다. 지상파 오디션 하나가 막을 내렸나 싶더니만. 또 시작이다.
‘동물원’ 멤버들이 한창 활동했던 20대 시절 모습으로 지금 다시 나타나 슈퍼스타K나 K팝스타에 도전한다면 생방송에 진출할 수 있을까. 절대 안 될 거다. 테이프가 늘어나도록 날마다 들으며 따라 부르고 악보를 받아 적으면서 친구들에게 얘기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 노래는 진짜 못해.”
언제부턴가 주말에 무심코 TV를 틀었다가 오디션 프로그램이 나오면 곧바로 채널을 돌린다. 들려오는 노래 중에 ‘진짜 못해’라고 할 만한 소리는 드물다. 다들 멋지게 잘 부른다. 그런데 어째선지 불편하다. 저 사람, 아까 그 사람이랑, 다른 사람인가. 비슷비슷한데. 더 껄끄러운 건 심사위원들의 이야기다.
“이야…. 우리 중에 저 친구보다 음악 잘하는 사람 있어요? 어떻게 우리가 이런 친구에게 감히 평가를 내릴 수 있겠어요? 그저 고맙게 들었습니다.”
“흠…. 독특함을 지녔지만 그걸 얼마나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찬사를 받은 참가자 열에 아홉은 감격의 눈물을 줄줄 흘린다. 비판을 들은 참가자는 대개 뭔가 크게 잘못한 듯한 표정으로 “솔직한 지적 감사합니다”라고 깊이 허리 숙여 인사한다. “심사위원님. 지금 도대체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이해하고는 있는 겁니까?”라는 과감한 반문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
합숙, 무대매너 훈련, 메이크업과 의상 변신을 경험하며 참가자들은 길들여지고, 서로 더 비슷비슷해진다. 프로그램이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어떤 모습을 어떻게 보여줘야 오래 살아남아 마지막 무대에 오를 수 있을지, ‘음악’ 외에 고민해야 할 것이 무한정 늘어난다.
안다. 괜한 소리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줄줄이 계속될 테고 수많은 이의 도전이 물밀듯 이어질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이크 잡은 심사위원들이 ‘대중성’이라는 단어를 조금만 덜 입에 담아주기를, 진행자가 ‘꿈’이라는 말을 조금이나마 덜 남발하기를, 참가자들이 조금씩만 덜 감격하고 덜 실망하기를, 부질없이 희망한다. 기성 시스템이 개인에게 던지는 요구사항을 누가 더 성실히 수행하는지 공개적으로 경쟁시키는 쇼 위에 그럴듯하게 덮인 ‘음악’과 ‘꿈’이라는 파렴치한 포장이 이제 그만 솔직하게 벗겨지기를, 아무 가망 없이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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