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정세진]벌거벗은 부패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0일 03시 00분


정세진 산업부 기자
정세진 산업부 기자
성완종 게이트를 보면서 필자는 부패가 만들어지는 과정보다는 부패가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주목했다. 기업가가 ‘보험성’ 정치자금을 제공해 사업에 이용하고 위기가 오자 보험증서를 꺼내 든 스토리는 흔하다. 물론 금액은 과거 수백억 원대와 비교하면 크게 줄었지만 부패 스토리의 원형은 주인공만 바뀌었을 뿐 그대로다.

하지만 이런 스토리에서 진실이 드러나는 속도는 과거보다 눈에 띄게 빨라졌다. 성 회장의 자살 직후 발견된 메모가 보도되자 “나는 모른다, 그와는 친분이 없다”고 말하던 정치인들의 변명은 며칠 사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각종 행사, 선거 과정에서 성 회장과 함께한 동영상, 이동경로를 밝혀주는 하이패스 기록 등이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영상은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면 누구나 찾을 수 있다. 굳이 대형 방송사의 카메라가 찍은 것이 아니라도 수없이 많은 인터넷 매체, 선거 유세장에 나온 지지자들의 스마트폰을 통해서도 기록됐을 것이다.

과거 같으면 영원히 묻히거나, 잡아떼면 공방에서 끝났을 증거들이 이제 동영상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드러나는 일이 흔해졌다. 이번 성완종 게이트뿐 아니라 문창극 정준길 사건도 비슷한 경우다.

문창극 총리후보자의 낙마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교회 강연이 만약 동영상 없이 증언만 있었다면 공방 수준에서 끝났을 가능성이 크다. 이 영상은 현재 유튜브를 통해 누구나 볼 수 있다. 정준길 새누리당 전 공보위원이 금태섭 변호사에게 당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선 출마 문제와 관련해 협박을 했다는 논란이 밝혀진 과정은 더욱 극적이다. 당초 정 전 위원은 이런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다. 하지만 택시기사가 이를 들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이를 뒷받침하는 블랙박스, 운행기록장치, CCTV 등 관련 증거가 나오면서 그의 주장은 무너졌다. ‘논란으로 몰고 가다가 잠잠해지면 나온다’는 공식은 더이상 통하지 않았다.

이제 유권자들은 논란의 중심에 섰던 정치인들이 나오면 몇 번의 클릭으로 그들의 과거를 검색할 것이다. 그들이 SNS를 통해 했던 말, 과거 강연이나 연설 동영상, 공개된 논문이나 저술, 부패로 처벌 받은 재판 기록과 뉴스는 평생 그들에게 주홍글씨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런 기록을 지우기 위한 방법도 등장하고 있다. 이미 온라인에서 특정 인물의 불리한 기록을 지워주는 이른바 평판 컨설팅업체가 성업 중이다. 하지만 유명인들의 기록은 끊임없이 복제되고 저장되고 퍼져 날아간다. 특정 업체가 정보기술의 진화와 데이터의 확장을 통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산업사회의 변환기에 발생한 부정부패와 탈법적 현상들은 정보지식화 사회에서는 발붙이기가 점차 힘들어지고 있다. 이런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구시대의 엘리트 정치인들은 선배 세대가 가르쳐 준 성공을 위한 부패 스토리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기술의 발전 덕분에 부패는 대중 앞에 그 속살을 훤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세진 산업부 기자 mint4a@donga.com
#성완종 게이트#정치자금#속도#SNS#문창극#정준길#주홍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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