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성호]커피값 더 올리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3일 03시 00분


이성호 사회부 차장
이성호 사회부 차장
한국의 원두커피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가격 비싼 걸로 말이다. 그냥 비싼 편이 아니다. 올해 초 소비자시민모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스타벅스에서 판매하는 아메리카노 한 잔의 가격은 4100원(톨 사이즈)으로 조사 대상 13개 나라 중 가장 높았다. 톨 사이즈 양이 335mL이니 한 모금(약 20mL) 마실 때 230원가량 지불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점심시간 서울 청계천 일대는 손마다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든 직장인들로 가득 찬다. 마치 컴퓨터에서 하나의 인물사진을 복사한 뒤 무한대로 ‘붙여넣기’ 한 듯한 광경이 펼쳐진다. 이 모습을 잘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종이로 된 일회용 커피잔을 들고 있다.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텀블러(다회용 컵)를 든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솔직히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사실 점심때마다 텀블러를 갖고 다니는 건 귀찮다. 양복 주머니나 핸드백에 넣고 다닐 수도 없으니 별 수 없이 손에 들고 밥을 먹으러 가야 한다. 다시 쓸 때마다 씻어야 하는 것도 불편하다.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려면 이런 귀찮음과 불편함을 감수할 대가가 있어야 한다. 스타벅스 등 대형 커피 전문점들은 대가를 마련해 놓았다. 텀블러를 사용하면 300원 정도 할인해 주는 것이다. 물론 이 돈이 적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싼 커피값을 감안할 때 이 정도 할인은 솔직히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고작 아메리카노 한 모금어치의 돈을 할인받기 위해 텀블러를 씻어 들고 다니는 부지런을 떨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쓸 때 할인해 주는 이유는 환경을 위해서다. 종이컵은 재활용률이 극히 낮기 때문에 사용량을 줄이지 않고선 뾰족한 대책이 없다. 자원순환사회연대에 따르면 국내에서 사용되는 종이컵은 연간 230억 개로 추산되고 분리배출을 거쳐 재활용되는 건 1.3%(약 3억2000만 개) 안팎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들고 다니던 수많은 일회용 커피잔은 버스 정류장에 수북이 쌓여 있다가 쓰레기차로 직행한다. 사무실 식당 노점 등에서 쓰이는 종이컵도 쓰레기통으로 가는 일이 많다. 아예 분리배출이 안되니 종이컵을 재활용할 수가 없다. 규제 완화 탓도 있다. 2008년 관련 법률 개정으로 일회용 종이컵 사용 규제가 완화됐다. 반환보증금제도 같은 해 폐지됐다.

사람들로 하여금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들게 하려면 할인 폭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적어도 1000원 이상 깎아 줘야 기꺼이 텀블러를 들고 커피 전문점을 찾을 것이다. 그래봤자 현재 커피값과 비교하면 할인율은 25∼30% 정도다. 필요하다면 일회용컵 사용 때 커피값을 올리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안전을 지키는 것 못지않게 환경을 보호하는 일도 귀찮고 불편하다. 또 비용도 많이 든다. 그렇다고 외면할 순 없다. 지구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환경보호의 ‘골든타임’이 계속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호 사회부 차장 starsky@donga.com
#커피#가격#한국#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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