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중앙은행이 올 1월 15일 최저환율제를 전격 폐지했지만 이 나라 국민들과 산업은 그 여파에 크게 휘말리지 않았다. 세계 각국이 그 비결에 주목하고 있다.
스위스는 유럽 금융위기로 스위스프랑이 급등하자 2011년 9월 이후 유로와 스위스프랑을 1 대 1.2로 유지하는 최저환율제를 시행해오고 있었다. 수출 중심의 산업을 보호하려는 정책의 하나였다. 하지만 유럽 각국이 양적완화(돈 풀기)를 확대하자 스위스중앙은행은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려워져 마침내 최저환율제를 폐지하기까지에 이른 것.
스위스의 주력산업이라 할 만한 금융과 관광, 정밀기계, 제약 산업은 모두 환율에 민감한 산업들이다. 당장 스위스 주가는 9% 가까이 하락했고 스위스프랑의 가치는 40%나 급등했다. 시계기업 스와치의 최고경영자(CEO) 닉 하이에크는 “쓰나미”라고까지 했다. 기업들은 갑작스러운 환율 변동 때문에 생존 전쟁을 벌여야 했다. 정부는 디플레이션도 걱정했다.
하지만 우려했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시계 산업은 2월 성장률이 주춤하기는 했으나 마이너스로 떨어지지 않았다. 거대 제약회사인 로슈는 1∼3월 매출액이 오히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3% 늘었다. 이유가 뭘까.
스위스의 위기돌파 해법은 일반적인 방법과는 달랐다. 세계 각국은 양적완화를 통해 수출을 늘리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스위스는 이런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고 봤다. 최저환율제 폐지 이후 수출 지역이 많았던 유로존에서는 환율이 크게 올랐다. 그렇지만 달러를 사용하는 국가에서는 환율 변동 폭이 상대적으로 적어 스위스 제품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기업들은 이 점을 위기 돌파의 기회로 삼아 판로를 유럽 중심에서 미국, 아시아 등으로 분산시켰다.
노동법도 기업과 근로자들의 적응을 도왔다. 스위스에선 주당 최대 45시간까지 고용주가 임금을 더 주지 않고 직원의 근무시간을 늘릴 수 있다. 올 1월부터 스위스 노동자들은 하루 30분∼1시간 정도 더 일하는 대신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경영진에게서 얻어냈다. 영리한 선택이었다. 기업들도 업무의 일부를 해외로 이전하는 방법도 검토했지만 제품 생산지는 자국으로 고집했다. ‘Swiss Made’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독일의 권위지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환율 변동이 스위스 경제에 오히려 ‘모닝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성장은 다소 주춤할 수 있어도 내실을 다질 좋은 계기라는 얘기다.
스위스의 사례는 환율에 민감한 한국에 배울 점을 던진다. 한국에서는 지금 원화 강세 장기화로 수출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다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환율이 떨어지면 국내 기업들은 죽는 소리를 하며 하소연만 하기 일쑤다. 하지만 스위스에서도 보이듯 중요한 것은 환율 자체보다 국제적인 경쟁력이 있는 산업을 내실 있게 키우기 위한 노사(勞使)의 노력이다.
환율 변동은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수출업체에 경쟁력을 시험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스위스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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