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변영욱]디지털 시대, 유명인으로 살아가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9일 03시 00분


변영욱 사진부 차장
변영욱 사진부 차장
영화 ‘스물’에서 대학 신입생 경재는 짝사랑했던 여자 선배가 내연 관계인 교수의 부인으로부터 뺨을 맞는 장면을 바라본다. 강의실 여기저기서 스마트폰으로 이를 촬영한 학생들에게 경재는 고개 숙여 정중하게 부탁한다. 제발 삭제해 달라고. 그러나 다음 날 친구들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장면은 고스란히 재생된다.

한국에서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이 유명인으로 살아가려면 이제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

과거 정치인들은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의혹이 제기되면 적당히 모르쇠 전략으로 위기를 넘기고 조직을 가동해 표를 얻을 수 있었다. 연예인들도 비슷한 전략으로 대중의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적절한 반대 논리와 윽박지름으로 원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유명인들은 과거를 비밀의 영역에 남겨 두고 싶겠지만 불가능하다. 목격자들의 진술은 흐릿하고 때로는 우왕좌왕하지만 여기에 첨단 기술이 개입하면 실체적 진실은 한순간에 떠오른다. 사람을 만난 적이 없으니 돈을 받지도 않았다는 주장은 고속도로 통행 기록을 통해서 금세 부정된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사실관계는 쉽게 확인된다. 한 인기 가수가 13년 전 군대를 가겠다고 공언하다 어느 날 미국으로 가버린 것도 어렴풋한 기억이 아니라 확실한 증거로 남아 있다. 악의적 편집의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그것 역시 대중이 꿰뚫어 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말 바꾸기와 모르쇠 전략은 이제 유명인의 위기관리 매뉴얼에서는 빠져야 할 때다.

디지털 저장 장치의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기록의 보관 기간도 점점 길어지고 있다. 이제 키워드와 날짜만 대략 확인된다면 의혹을 사실로 만드는 증거는 쉽게 확보된다.

의혹 제기는 기자들만의 특권이 아니다. 모든 개인이 기록 장치를 들고 다닌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휴대전화는 통화 내용을 쉽게 녹음할 수 있다. 도처에 붙어 있는 폐쇄회로(CC)TV는 유명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한다. 빛의 속도로 퍼진다. 공중파와 종편 방송, 인터넷은 하루 종일 하나의 이슈에 대해 천착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쉽게 물든다. 쉽다고 해서 대중이 거짓에 물들었다고 할 수도 없는 때가 대부분이다.

디지털은 목소리 큰 정치인들보다 민주주의 실현에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거짓말과 과장 그리고 프로파간다는 설 자리가 별로 없어 보인다. 변명과 정당화는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다. 많은 역사적 순간에서 이런 전략이 성공을 거뒀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방법을 아직도 쓴다. 시대가 변하면 실수와 잘못에 대응하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 조심해야 하고 잘못했다면 시인해야 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아날로그 시대와 달리 디지털 시대에 이미지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좋게 보인다고 해서 되는 시대는 끝났다. 행동이 좋아야 한다. 이래저래 쉽지 않은 시대다.

변영욱 사진부 차장 cut@donga.com
#디지털#유명인#정치인#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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