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장윤정]은행권 경단녀 바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9일 03시 00분


장윤정 경제부 기자
장윤정 경제부 기자
솔직히 아이를 낳기 전까지 ‘경단녀(경력단절여성)’란 단어는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워킹맘이 되고 보니 경력단절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퇴근시간이 불규칙하고 주말 근무가 다반사인 ‘기자 엄마’가 어린이집에만 기대 아이를 키우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집에서 아이를 돌봐줄 아주머니를 구하는 건 비용이 만만치 않고, 믿을 만한 분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집 근처에 살며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와 퇴근시간까지 돌봐주고 주말까지 희생하는 친정 엄마가 없었다면 나도 경력단절의 위기에 빠졌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크게 늘어난 시중은행들의 경력단절여성 채용에 관심이 가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여성이 경제활동을 포기하는 데 따른 사회적 비용이 한 해 15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어려운 숫자를 떠나 육아휴직 중 놀이터에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직장을 그만둔 젊고 똑똑한 엄마들을 많이 만났다. 정부 정책에 발맞춘 움직임이겠지만 은행들의 경단녀 채용 확대에 힘입어 임신, 출산, 육아로 커리어를 포기한 아까운 엄마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

하지만 은행권이 경단녀 채용을 본격화한 지 2년여가 지나면서 이를 둘러싼 잡음이 적잖이 들려온다. 우선 ‘은행권 경단녀 채용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데 일조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은행권의 경단녀 채용 형태는 정규직과 정규직 같은 비정규직, 완전한 비정규직 등 세 부류로 확연히 갈린다. 신한은행의 시간제 일자리는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이다. 기업은행의 경우 비정규직이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무기계약직’이다. 반면 우리은행과 국민은행, 농협은행 등은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비정규직이다. 지난해 은행 재취업에 성공한 한 여성은 “채용된 여성들 대부분이 과거 은행 근무 등 괜찮은 경력을 갖춘 편”이라면서 “그런데도 은행에 따라 신분이나 보수 면에서 격차가 벌어진다”고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우려는 이명박 정부의 ‘고졸 채용’처럼 경단녀 채용 확대도 한때 유행했다가 정권 교체와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나도 상고 출신”이라며 고졸 채용 확대를 주문했다. 은행들은 앞다퉈 고졸 채용에 나서며 화답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 퇴사하는 고졸 직원이 늘고, 고졸 신규 채용 역시 감소 추세다. 은행들은 ‘고졸 직원들의 퇴사가 느는 건 직원 개인의 문제’라고 설명하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선례를 보며 현재 근무 중인 경단녀들도, 채용공고를 보고 구직에 나서는 경단녀들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한 지인은 “은행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해볼까 하다가 마음을 바꿨다”면서 “정권이 바뀌면 ‘골칫거리’ 취급받지 않겠느냐”라고 털어놨다.

경단녀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 저출산 문제 해결, 경제활력 회복 등 거창한 이유를 떠나 일자리로 돌아갈 기회를 얻고 싶어 하는 경단녀를 채용할 때 은행들이 이들에게 장기적 비전을 보여주는 게 중요한 이유다.

장윤정 경제부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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