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자 2면에 ‘메르스 최전선의 사투’라는 제목으로 국립중앙의료원 음압병동에서 보호복을 입은 간호사가 메르스 환자를 돌보는 사진이 실렸다. 사진공동취재단 대표로 회사 후배가 병실에 들어가서 촬영한 사진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현장을 공개해준 병원에 감사할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간호사의 긴장감과 결연함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전대미문의 재난 현장에서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했다. 그런데 지면에 실리기도 전에 간호사와 환자의 얼굴은 이미 모자이크 처리돼 있었다. 후배를 계속 설득했다. 얼굴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후배는 병원 측과 다시 통화해 취지를 설명했다. 대답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해당 간호사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사진 속 환자와 간호사의 얼굴은 희미하게 가려졌다.
메르스 사태 동안 신문과 인터넷 언론에서 환자와 보호자의 초상권은 대체로 지켜지고 있다. 의료진 초상권도 마찬가지다. 이를 두고 역사를 기록한다는 보도사진 성격에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 사진들이라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자녀를 둔 간호사 등 의료진의 고충을 들은 현장 기자들의 마음은 달랐다. 의료진 부모를 뒀다는 이유만으로 자녀들이 학교와 학원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앞에서 모자이크는 사진기자가 사진 속 주인공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그렇지만 메르스 사태 초반부터 취재원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했던 건 아니었다. 다매체 시대의 치열한 경쟁은 바이러스 공포 앞에서도 가라앉지 않았다. 실시간으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사진이 올라오면서 뉴스룸에서는 다른 앵글에 대한 갈증이 심해졌다. 확진환자가 머물렀던 공간을 촬영하려는 의지를 누르기 힘들었다. 게다가 정부와 병원들의 초기 대응과 설명이 투명했다고 여기는 기자들은 많지 않았다. 특히 관리가 철저할 줄 알았던 대형 병원들의 모습에서 불신이 커질수록 근접촬영 욕구도 덩달아 커졌다.
숙명처럼 현장에 나가야 하는 후배들은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 불만을 터뜨렸다. 선배들은 현장에 나가는 후배 각자가 대체 어떤 마스크를 써야 안전한지, 어디까지 접근해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없었다. 아직까지 사진기자 중에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현장을 여기저기 다니는 사진기자들이 바이러스 확산의 정거장이 될 가능성 때문에 긴장을 늦추진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한국기자협회 등 5개 언론단체는 작년 세월호 사고 이후 재난보도준칙을 다시 만들었다. 이번 메르스 취재 과정에서 기자들이 이 준칙을 얼마나 지켰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무한경쟁시대 기자들이 더 나은 보도를 하기 위해 각자도생하는 방식이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한다. 바이러스 말고라도 이래저래 처리하고 넘어가야 할 과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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