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유영]사과는 패자의 언어가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9일 03시 00분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소설가 신경숙 씨의 표절 논란이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사과를 위기 대응의 마무리로 여긴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과가 위기의 또 다른 시발점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위기 대응 과정에서 위기가 더 커져버리는 것이다. 신 씨 관련 논란이 바로 그렇다. 기업의 위기관리 전문가들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신 씨의 대응 방식에 아쉬워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우선 ‘나’가 빠진 사과라는 점이다. 그가 표절을 시인한 대목은 이렇다. “문제가 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의 문장과 ‘전설’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표현에 대해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서 신 씨는 ‘내가 …했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반면 작품 활동을 계속하리라는 의지를 표명할 때에는 ‘나’를 강조했다. 그는 “나에게 문학은 목숨과 같은 것이어서 글쓰기를 그친다면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원고를 써서 항아리에 묻더라도, 문학이란 땅에서 넘어졌으니까 그 땅을 짚고 일어나겠다”고 했다.

위기관리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과의 기본은 유려한 문장의 나열이 아닌 단순 명료한 메시지여야 한다. 표절이 소설가에게 낙인과 다름없다지만, 기왕 사과를 하기로 했다면 나를 먼저 내세워 내 잘못을 인정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또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언론과만 인터뷰한 점도 전문적 위기관리 관점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사과 표명에는 기자회견이나 e메일 등을 통한 사과문 배포 등 여러 공개적인 방식이 있다. 하지만 신 씨는 이례적으로 특정 언론과의 인터뷰를 택했다. 문인 개인이라는 특성 때문에 이런 방법을 택한 걸로 짐작이 가지만, 홍보 전문가들은 “특정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한 입장 표명은 처음부터 점수를 깎아먹고 시작하는 셈이다. 타 매체 기자들이 호의적으로 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마지막으로 타이밍이다. 신 씨는 표절 의혹이 불거진 뒤 6일이 지나서야 입장 표명을 했다. 같은 사과를 하더라도 등 떠밀려서 했다는 인상을 주기 십상인 대목이다. 2013년 탤런트 김혜수 씨는 논문 표절 의혹이 불거지자 불과 1시간여 만에 깨끗하게 인정했다. 물론 글쓰기가 주업인 사람과 상황은 다르지만 기민한 대응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사고’와 ‘사과’ 사이의 간격이 커지면 문제가 커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위기를 겪지 않는 게 최선이겠지만 위기는 누구에게나,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위기는 ‘내게만 생긴 재수 없는 일’이 아니란 뜻이다. 사과에 인색한 우리는, 사과를 패자(敗者)의 언어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위기관리 전문가인 김호 더 랩에이치 대표는 저서 ‘쿨하게 사과하라’에서 “사과는 승자의 언어이며 존경과 신뢰를 받기 위해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말했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 위기를 딛고 일어날 수 없는 사람은 쉽게 사과할 수 없다.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abc@donga.com
#신경숙#표절 논란#사과#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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