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28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아시아경기 남자농구 한국과 필리핀의 8강 경기를 지켜봤던 프로농구 전자랜드 김성헌 사무국장의 말이다. 이 체육관은 전자랜드의 안방이기도 하다. 97-95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둔 한국이 최종 우승까지 했지만 필리핀 국민들의 농구에 대한 사랑은 국내 농구 관계자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난달 1일 전자랜드는 “소속 선수 김지완(25·187cm)이 필리핀 프로농구 히네브라 산미겔에 합류했다”고 발표했다. 국내 프로농구 선수가 필리핀 리그에 진출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 대부분의 반응은 이랬다. “농구의 본고장인 미국에 가는 것도 아닌데 무슨 얘깃거리가 되느냐.” 기자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었다. 팀은 물론 국내 농구 발전을 위해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한 시도였다.
자국 리그 발전을 위해 3차 대회에 한해 키 193cm 이하의 아시아 선수를 뛸 수 있게 하고 있는 필리핀은 한국농구연맹(KBL)에 선수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각 구단에도 협조 공문을 보냈지만 받아들이는 구단이 없었다. 국내 프로농구의 비시즌 기간에만 ‘임대’를 해주는 것이었지만 선수의 부상이나 사고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다른 선수들과 손발을 맞출 시간이 줄어드는 것도 ‘필리핀 파견’을 꺼리는 이유였다. 전자랜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팀의 유도훈 감독은 “새로운 경험을 할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CNN 필리핀은 지난달 25일 “김지완이 감기가 걸렸는데도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그는 전날 로드 워리어스와의 경기에서 후반에만 16점을 몰아넣으며 팀 승리를 도왔다. 덕분에 히네브라는 12개 팀 가운데 8위로 마지막 플레이오프 티켓을 거머쥐었다. 히네브라는 플레이오프에서 정규리그 1위 알래스카 에이시스의 벽은 넘지 못했다. 지난달 26일 경기를 끝으로 김지완의 필리핀리그 도전은 막을 내렸다. 성과는 확실했다. 지난 시즌 국내에서 평균 5.1점을 기록했던 김지완은 필리핀 정규리그에서 평균 13.8점을 올렸다. 김 사무국장은 “(김)지완이가 큰 자신감을 얻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유 감독은 “팬들에게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홍봉철 구단주가 빠른 결단을 내려 줬다. 내년에도 필리핀리그에서 우리 선수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필리핀 친구’가 부쩍 늘었다. 그중에는 국내에 거주하는 필리핀인도 있다는 게 구단 관계자의 말이다.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고국에서 뛰었던 한국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체육관을 찾는 필리핀 팬들도 생기지 않을까. 큰 변화도 작은 일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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