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유근형]복지부 장관의 무력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3일 03시 00분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2년 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의 진원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호텔 로비를 서성거린 적이 있다. 현장에서 무작정 취재원을 기다리는 일명 ‘뻗치기’를 중동 한복판에서 감행한 것이다. 당시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우디 출장에 앞서 전격 사임 의사를 밝혔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장관과 동행했던 복지부 풀기자단에 ‘사임의 변’을 받아 내라는 각계(회사, 동료 기자)의 요청이 빗발쳤다.

며칠간 기자들의 질문 공세를 웃음으로 넘기던 진 전 장관은 중요 일정이 마무리되자 입을 열었다. “같이 온 기자들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사퇴는 계속 생각해 오던 일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무력감을 느껴 왔다.”

기다리던 대답을 들었건만, 왠지 모르게 서글펐다. 장관이 느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오롯이 전달됐기 때문이다.

진영, 그가 누구인가. 박근혜 정부의 개국공신으로 실세 중의 실세로 꼽혔다. 항상 경제 부처, 청와대에 치여 기를 펴지 못하던 복지부 관료들은 “드디어 복지의 시대가 왔다”라며 기대했다. 그랬던 그가 기초연금제도에 대한 이견 때문에 청와대와 갈등을 빚다 6개월 만에 사임한 것은 일종의 ‘데자뷔’였다.

이 같은 무력함은 후임 문형표 체제 2년 동안 계속됐다. 국민연금과 연계한 기초연금안을 반대하던 복지부 관료들은 진 장관 사퇴 뒤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꿔 찬성 논리를 개발해야 했다. 경제 부처의 드라이브에 밀려 외국인 투자 개방형 병원 1호(산얼병원)를 ‘울며 겨자 먹기’로 추진했고, 수년째 준비한 건강보험제도 부과 체제 개편 추진을 갑자기 보류해야 했다. 복지부 고위 관료들이 “때론 복지부가 영혼이 없는 것 같다”라며 자조했을 정도다.

윗선 지시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문 장관의 어깨는 항상 지쳐 보였다. 메르스라는 중대 사건이 발생해도 청와대 대면보고 기회를 잡지 못하다 6일 만에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게 처음 보고한 것을 두고 비판이 쏟아질 때는 오히려 장관이 안쓰러웠다. 특히 즐기던 담배를 끊으며 담뱃값 인상을 추진할 때 보였던 장관의 활기찬 모습을 자주 볼 수 없었던 것도 안타까웠다.

정부의 주요 복지 공약들이 표면화된 상황에서 새 장관은 미래를 내다보며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어야 된다. 질병관리본부 등 방역체계 개편, 소득 중심의 건강보험제도 개편,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강화 등 정권 후반의 이슈들은 한번 손을 대면 수십 년 동안 국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많다.

전재희 전 장관처럼 기획재정부 장관과 목소리를 높이며 토론할 수 있는 사람, 월권 지적을 받으면서까지 공무원연금 개혁을 지지한 유시민 전 장관처럼 현재의 비난보다는 미래를 위해 나아갈 수 있는 사람, 약값 인하·의약품 슈퍼 판매 등을 관철했던 진수희 전 장관처럼 이해집단의 반대를 뚫고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더이상 무력감을 느끼는 장관도, 이를 보며 무력해할 국민도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
#복지부 장관#무력감#진영#문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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