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로서 특정한 분야 사진을 오래 찍다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처음의 문제의식과 새로운 사진에 대한 욕심이 약해질 때가 있다. 혹시나 청와대 출입을 오래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될까 봐 경계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이 글을 쓴다. 대통령이 국민과 제대로 소통해 좀 더 높은 지지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미국 백악관 사진이 자연스럽다고 말하는 사진기자가 많다. 대통령 사진이 기획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미국 대통령의 이미지 관리는 이미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 자연스러움은 이 역사에서 비롯됐다.
한국에서 사진기자들이 직접 대통령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그전까지는 정부가 제공하는 사진이 신문 지면에 실렸다. 청와대 사진기자단이 출범한 초창기에는 필름으로 사진을 찍어 마감하는 방식이었다. 하루에 대여섯 장의 사진만이 회원 언론사에 전해졌고 그중 한 장이 지면에 게재됐다. 그러니 청와대는 다음 날 국민에게 대통령의 어떤 모습이 전해질지 대략 알 수 있었다.
현재도 언론사끼리 정한 당번 언론사의 사진기자가 대통령의 공식 일정을 기록해 회원사에 뿌려준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진이 유통된다. 그 사진들은 신문 독자뿐만 아니라 무료 인터넷 독자들에게도 빠른 속도로 전해진다. 게다가 당번 사진기자들이 대통령의 공식 행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미니버스 안에서 실시간으로 마감하기 때문에 어떤 사진이 나올지 청와대가 예측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대중의 반응도 즉각적이다. 사진기자들도 놀랄 정도로 많은 댓글이 대통령 사진 밑에 붙는다.
조금이라도 허점이 보이면 여론은 냉혹하게 사진을 비판한다. 사진기자들도 덩달아 비판의 대상이 된다. 대통령이 메르스 현장 점검을 위해 찾았던 병원 사진이 대표적이다. 벽에 붙어 있던 ‘살려야 한다’는 구호가 누리꾼의 시선을 끌었다. 병원 직원들이 A4 종이에 프린트해서 붙여 놓았던 구호를 누리꾼들은 청와대 공보팀의 연출 작품으로 낙인찍었다. 패러디 사진들이 인터넷을 돌아다녔다.
가뭄 사태 때 경기 김포의 논에 소방차를 동원해 물을 뿌린 대통령 사진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타이밍과 상황 설정이 뜬금없다는 반응도 있었고 대통령의 현장 경험 부재를 질타하는 지적도 많았다. 강한 수압 때문에 소방 호스를 치켜들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일부 누리꾼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비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청와대의 준비가 적절했는지 지적하고 싶다. 메르스 치료 병원과 김포 논에서 사진을 찍기 전에 사진의 적절성과 앵글을 고민한 참모가 있었을까. 만약 그런 고민이 있었다면 누리꾼의 오해를 피할 수 있었으리라. 이제는 청와대가 사진을 컨트롤할 수 없다. 대통령을 담은 이미지는 지금도 온갖 매체에 실리고 있다. 보여주려면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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