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평해전’을 보기 위해 표를 끊었다. 전직 영화 담당 기자이다 보니 완성도를 평가하는 버릇이 발동했다. 화면 구성, 사운드, 스토리의 미진한 부분이 눈에 들어온 초반과 중반부에는 집중력이 떨어져 자꾸 딴 생각이 들었다. 1970년대식 유머와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몇몇 장면에서는 낯이 간지러웠다.
후반부, 전투가 시작되자 ‘이 영화가 내가 봤던 그 영화가 맞나’ 싶었다. 긴박한 전투 장면은 서스펜스를 극도로 끌어올렸고, 등장인물들의 안타까운 희생은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초반과 중반부는 별 5개 만점에 별 2개, 후반부는 별 4개.
엔드크레디트가 올라가는 것과 동시에 등장하는 실제 ‘제2연평해전’ 부상자와 전사자 가족의 인터뷰 영상은 영화가 실제 사실을 얼마나 충실히 반영했는가라는 궁금증을 불렀다. 당시 기사와 기록물들을 뒤졌다. 그러고 나니 영화의 여운으로 미열이 남아있던 심장은 화가 나 뜨거워졌다.
당시 정부가 보여준 태도가 그랬다. 부상한 해군 장병들이 입원한 국군수도병원에 대통령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전사자 영결식에도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이 없었다. 참수리 357호가 북한 등산곶 684호의 공격을 받고도 다른 함정의 지원 없이 외롭게 싸우던 영화 장면이 오버랩 됐다.
전사자 6명의 면면을 보니 이들이 더 외로워 보였다. 명문대 출신은 해군사관학교를 나온 참수리 357호의 함장 윤영하 소령뿐이었다. 한상국 상사는 광천상업고, 조천형 중사는 대전대 사회체육학과, 황도현 중사는 숭실대, 서후원 중사는 대구기능대 출신이었다.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묘사된 박동혁 병장은 원광보건대 치기공과에 다녔다. 황 중사는 대학 1학년을 마치고 학비를 벌겠다며 해군에 자원입대했고, 서 중사의 집안은 사과농사를 지었다. 이처럼 대부분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다.
천안함 폭침 사건의 기록을 찾아보니 역시 명문대나 서울 소재 대학 출신은 드물었다. 희생된 46명의 용사 중 이용상 하사(숭실대)와 강태민 상병(홍익대)만이 서울 소재 주요 대학 출신이었다.
두 사건 모두 북한의 도발이 잦은 서해상에서 해군과 관련된 것이었다. 도발이 잦은 곳이라면 공부 잘한, 머리 좋은 인력을 배치해야 전투력을 높일 수 있는 것 아닐까. 왜 뱃멀미 나고 힘들다는 해군에서는 명문대 출신을 찾기 힘든 걸까. 순직자 중에는 고위층 자제도 없었다.
영국 왕실은 대대로 왕자들에게 엄격한 군복무를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달 10년간의 군 생활을 마친 해리 왕자는 아프가니스탄 남부 탈레반 거점 지역에서 복무했다. 찰스 왕세자는 6년간 해군 장교로 복무했고, 그의 동생인 앤드루 왕자는 1982년 헬기 조종사로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공산주의자도 예외는 없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도 6·25전쟁에 참전해 1950년 전사했다.
‘연평해전’의 단체 관람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군 장병들의 안보교육용으로 제격이라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정작 봐야 할 분들은 따로 있다. 본인이나 자제들의 군 미필 혹은 면제로 눈총을 받으며 청문회 문턱을 간신히 넘은 국무위원들, 군대 안 간 국회의원들은 단체로 극장을 찾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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