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유성열]색종이 아저씨와 어른이 된 ‘20세기 어린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2일 03시 00분


유성열 정책사회부 기자
유성열 정책사회부 기자
“예전에 나는 쉬운데, 우리 친구들이 하면 어려워서 못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죠. 하지만 이제는 어른이 다 됐으니까 아주 잘하실 거예요.”

눈물을 왈칵 쏟았다는 이들이 많다. 18일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에 출연한 ‘색종이 아저씨’(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의 한마디가 코끝을 찡하게 했다. 이날 시청층은 1980년대에 태어나 아저씨와 함께 종이를 접었던 ‘2030세대’가 주를 이뤘다. 그들은 20여 년 만에 만난 아저씨 앞에서 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1988년 KBS1 ‘TV유치원’을 통해 방송을 시작한 아저씨는 지금의 ‘뽀로로’ 못지않은 ‘어통령’(어린이 대통령)이었다. 아저씨의 손을 거친 색종이는 온갖 만물로 변신했다. 아저씨는 아침마다 “코딱지(어린이)들도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북돋아 줬다. 공부와 경쟁에 지친 ‘20세기 어린이’들은 아저씨의 말을 굳게 믿고 어른이 되길 준비하며 고통을 인내해 왔다.

종이접기는 어려웠다. 어른인 아저씨가 하면 쉬워 보였지만 어린이인 내가 하면 실패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아저씨의 말처럼 그때는 어른이 되면 뭐든지 잘할 줄 알았다. 종이접기는 물론이고 대학과 번듯한 직장도 당연했다.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는 것도 어른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어른이 되면 세상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갖출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날 20세기 어린이들은 아저씨에게 다시 한 번 어리광을 피웠다. “아저씨 저희는 아직도 잘 못해요”, “서른이 됐는데도 쉬운 게 하나도 없어요”, “어른이 됐는데 사는 게 쉽지 않네요”. 어른이 됐지만, 아직도 못하는 게 많은 세대. 어른이 됐으니 이제는 잘할 거라며 아저씨가 건넨 위로가 역설적으로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든 것이다.

지금의 2030세대들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스펙’을 갖추고 사회에 진입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청년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어 청년층(15∼29세) 실업률(6월 기준 10.2%)은 두 자릿수에 진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원어민 못지않은 영어 실력과 각종 자격증을 갖추고도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다. 그마저도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비정규직과 파견, 용역이라는 늪에 빠져 있다. 잘해 보고 싶고, 잘할 수도 있지만, 잘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청년들이 많은 것이다.

그래도 색종이 아저씨는 다시 한 번 코딱지들의 등을 토닥였다. 아저씨의 말에 힘을 얻은 2030세대들도 다시 한 번 달려보고 싶다. 내년 1월 1일부터 정년은 60세로 연장된다. 정부는 이달 말 청년 고용절벽 해소 대책을 발표한다. 코딱지들에게 남은 시간은 다섯 달 남짓이다. 이제는 아저씨가 아닌 기성세대가 답을 해야 할 차례다. 기성세대들은 코딱지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코딱지들이 종이를 잘 접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이제는 아저씨가 아니라 기성세대의 몫이다.

유성열 정책사회부 기자 ryu@donga.com
#색종이 아저씨#20세기 어린이#어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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