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승건]“대학에 가면 공부해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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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당연한 말에 놀랐다. 확인차 다시 물었다.

“대학에서는 운동을 안 할 거라는 얘기인가요?”

기자의 개념 없는 질문에 당황할 법도 했지만 어머니는 친절하게 대답했다.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건 어려워요. 계속 국가대표를 하려면 휴학이나 자퇴를 해야 되는데…. 아이도 공부를 하겠다고 했고요.”

지난주 막을 내린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에 캐나다 리듬체조 국가대표로 출전한 허예림 양(18) 얘기다. 허 양은 어릴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가 시민권을 얻었다. 현재 캐나다 시니어 랭킹 6위다. 허 양은 5학년 때 방과 후 체육수업의 일환으로 리듬체조를 시작했다. ‘재능이 있다’는 주변의 평가를 듣고 단순한 취미 활동이 아닌 선수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운동만 한 것은 아니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도 열심히 했다. 허 양은 9월 토론토대 입학을 앞두고 있다. 이 대학은 올해 영국 더타임스가 발표한 세계 대학 랭킹에서 캐나다 1위, 세계 20위에 오른 학교다.

“리듬체조를 잘하는 게 입학에 도움이 됐나요?”

또 다른 개념 없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랬다.

“그 대학은 체육 특기자(엘리트 선수) 같은 거 없어요. 가산점도 안 주는 걸요.”

학업과 운동의 병행. 스포츠 선진국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미국의 명문 스탠퍼드대에 입학했지만 2학년 때 중퇴했다. 학점 관리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1998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때 한국은 미국 애리조나주립대를 다니던 박지은을 국가대표로 뽑았지만 학교에서 결석을 인정해 주지 않아 출전하지 못했다.

반면 한국은 운동만 잘해도 대학에 간다. 소위 명문 사립대들부터 스포츠 스타 ‘유치 전쟁’을 벌인다. 물론 운동을 잘하는 것은 공부를 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정받아 마땅한 재능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학생들을 필기시험 성적과 상관없이 대학의 체육관련 학과에 합격시키는 것을 트집 잡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수업 참석 여부는 입학과는 별개다. 대부분의 대학 학칙상 교수가 인정하면 리포트 제출 등으로 출석 대체가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사이버 대학’이 아닌 이상 일반 학생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현재 대학에 다니는 스포츠 스타들을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운동만 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이 쉽게 바뀔 수는 없다. 평일에는 수업을 듣자며 2011년 ‘고교야구 주말리그’를 도입했지만 슬그머니 ‘평일에도 야구하고 주말에도 야구하는’ 과거로 돌아간 것이 단적인 예다.

그나마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강의도 듣고 시험도 본다. 밤낮 없는 훈련과 대회 출전으로 밥 먹듯 수업을 거르다 방학을 앞두고 양주 한 병 들고 지도교수를 찾아 읍소하던 시절보다는 나아졌다. 공부로 대학을 가는 국가대표가 언제쯤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
#대학#한국#체육 특기자#허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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