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회사와 이동통신회사. 전혀 유사점이 없을 것 같은 이 두 산업에는 공통분모가 꽤 있다. 첫째, 대표적인 규제산업이다. 둘째, 정부가 알뜰주유소나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등 각종 정책으로 직접 시장에 개입한다. 셋째, ‘비싼 기름값’이나 ‘높은 통신요금’에 대한 비판을 우려해 기업들이 실적 자랑을 꺼린다.
지난해 최악의 실적을 거둔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올 상반기(1∼6월) 일제히 반등에 성공했다. 그러나 정유사들은 “알래스카의 여름”(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 같은 표현으로 ‘반짝 상승’임을 강조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올해의 정유사 실적은 안정적인 유가 흐름에 기인한 것인데 정제마진이나 원유 재고가치는 국제정세에 워낙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 중동의 정유공장 건설 프로젝트들이 속속 마무리되면서 중동 원유로 석유제품을 만들어 이익을 남겨온 ‘한국식 비즈니스 모델’에는 큰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정유사들의 ‘겸손 모드’에는 또 다른 속내가 있다. 세제 혜택 문제다.
국내 정유사들이 수입하는 원유에는 3%의 관세가 붙는다. 정유사들은 이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과 함께 석유화학제품의 원료인 나프타도 생산한다. 정유 4사가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에 공급하는 나프타는 전체 수요의 절반 정도다. 정부는 2007년 1월 수입 나프타에 대한 관세를 없앴다. 그러면서 ‘할당 관세’라는 제도를 통해 국내 정유사들이 나프타 생산에 쓴 원유에 대해서는 관세를 모두 환급해줬다.
정부는 지난해 말 나프타 제조용 원유 할당 관세를 제로(0)에서 1%로 높였다. 이에 따라 정유 4사는 1100억 원 정도의 세금을 추가로 내게 됐다. 세수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정부는 할당 관세를 추가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할당 관세를 내년에 3%로 높이면 2200억 원의 세금을 추가로 걷을 수 있어서다.
‘좋은 성적표’를 받아든 정유사들이 표정 관리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정부는 할당 관세를 완전히 철폐하려 했지만 정유사들이 대규모 적자를 내는 바람에 1% 수준에서 타협점을 찾았다”며 “올해 실적이 대폭 개선되면서 세제 혜택 연장을 대놓고 주장하기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1∼3% 관세를 물고 국내에서 생산한 나프타는 무관세 혜택을 받는 수입 나프타보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정유사들로선 국내 공급량을 대거 수출로 돌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나프타를 해외에 수출하면 할당 관세와 무관하게 원유에 매겨진 관세를 모두 돌려받을 수 있다. 정부가 2000억 원대 세수에 눈이 어두워 할당 관세에 손을 댔다가는 세수 효과도 못 보고 ‘나프타 수급 불균형’만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돈 잘 버는 정유사들이 과도한 세제 혜택을 받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애초부터 국내 생산 제품에 대한 역차별이 존재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정당한 목적을 가진 정책이라고 꼭 좋은 효과를 담보하는 건 아니다. (정부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지만) 알뜰주유소나 단통법만 보더라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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