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도 국적이 있다. 누가 찍느냐에 따라 사진은 달라지고 편집자에 따라 독자들에게 보이는 것도 다르다. 한국에만 존재하는 사진이 있다. 이산가족 상봉 사진이다. 1945년 9월 이후 분단과 6·25전쟁은 수십만 명의 이산가족을 만들었다.
동아일보 데이터베이스를 찾아보니 이산가족 사진의 시작은 1971년 일본 삿포로 겨울올림픽에 출전한 ‘북괴’의 여자 스피드스케이트 선수 한필화와 한국의 오빠 한필성 씨가 전화로 통화하며 통곡하는 2장의 사진이다. 1985년 남북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의 교환방문 때 카메라 앞에서 처음으로 상봉 장면이 벌어졌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결과로 그해 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서울과 평양에서 이뤄졌고 4차 상봉 행사부터는 북한 금강산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달 남북 고위급 접촉 끝에 다음 달 20∼26일 이뤄질 상봉 행사는 역대 20차에 해당된다. 한국의 신문과 방송은 노인들이 서울 남산 아래 대한적십자사를 찾아 상봉 대상자 신청을 하고 가족에게 줄 선물을 사고 잠을 설치고 꿈에 그리던 가족을 만나 울고 헤어지는 장면을 일일이 보여준다. 수십 년의 이별 끝에 이뤄지는 상봉의 순간 터져 나오는 감정의 폭발을 담은 사진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전후 세대에겐 통일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상봉 행사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정부는 금강산 면회소 시설을 점검했고 기자들은 대표 취재단을 꾸리기 위해 순번을 점검하고 있다.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9·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세미나’는 2005년 6자회담에서 도출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합의 사항의 의미를 되짚었다.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북한이 불참한 세미나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한반도 긴장 조성에 반대한다며 북한에 간접 경고했다. 그러나 북한은 노동당 창당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다음 달 10일을 전후에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을 할 수도 있다는 암시를 하고 있다. 상봉 행사 열흘 전에 큰 위기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만약 암시가 현실화된다면 상봉 행사를 둘러싼 갈등은 증폭될 것이다. 가장 아픔을 느끼는 건 상봉을 기대하는 당사자들이다.
상봉 행사가 취소되면 이번에 선정된 대상자들도 다음에 신청 절차를 또 거쳐야 한다. 대부분 80, 90대 고령인 이들이 생전에 다시 추첨을 통과할 확률은 아주 낮다. 현재 통일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명단을 올려놓은 상봉 대상자만 6만6000여 명이다. 이 중 100명을 추린다는 것도 폭력적이지만 이번에 상봉이 무산돼 다음에 다시 추첨하게 한다는 것도 폭력적이다.
북한에서 최고의 발행 부수를 자랑한다는 노동신문은 상봉 행사를 전하지 않는다. 슬픔이 체제 안정과 선전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봉까지 딱 한 달 남았다. 애간장을 태우는 시간이 될 듯하다. 북한이 인륜을 협상의 지렛대로 삼는다면 남북 간 마음의 장벽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