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민병선]화성으로 간 문학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2일 03시 00분


민병선 문화부 기자
민병선 문화부 기자
둑이 터졌다. 문학의 아우라가 무너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과거는 얼마나 화려했나. 서양에서는 인쇄술이 발달한 뒤 수세기 동안 인류의 정신을 수놓았던 문화의 꽃이었다. 우리에게도 계몽의 시대부터 문학은 ‘문화권력’이었다. 교과서에 실린 문학으로 국어를 배웠고, 문학에서 따온 드라마로 저녁 시간을 꽃피웠다. 젊은 시절 누군가는 문학을 인생의 좌표로 삼은 ‘문청’이었고, 누군가는 페이지를 넘기며 근대화의 고단함을 달랬다.

예술과 오락의 꽃봉오리였던 문학이 지금 왜 이럴까. 활자 대신 영상의 시대가 오며 문학은 영화와 드라마에 왕좌를 양보해야 했다. 텍스트에 몰입해야 하는 적극성이 필요 없는, ‘보여지는’ 영상이 얼마나 편리한가. 현대 서사의 주도권은 영상으로 넘어갔다.

그로기 상태의 문학이 최근 카운터펀치를 맞았다. 신경숙 작가 표절 논란 말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중작가의 표절 논란을 보며, 대중은 이제 문학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픈 청춘을 위로하는 작품을 쓰던 박민규 작가마저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재밌지도, 도덕적이지도 않은 당신들에게 이제 뭘 배워야 하나요?’

표절 논란을 실은 기사에 달린 인터넷 댓글이다. 작가와 그를 둘러싼 문단 권력이 표절을 부정하고, 과거의 아우라를 무기로 모호한 ‘뭉개기 변명’을 쏟아내는 데 사람들은 질렸다.

그러는 사이 새로운 흐름이 보인다. 순수문학 작가들이 무시했던 웹소설에 사람들(정확하게는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있다. 달달한 로맨스 소설이 주류를 이루는 웹소설 시장은 올해 400억 원대로 성장했다. 웹소설 작가들 중에는 한 달에 수백만 원을 버는 이들도 있다. 최근에는 장강명 정세랑 김이환 같은 순문학 작가들이 웹소설 작가들의 ‘비법’을 한 수 배우기 위한 자리를 갖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문학의 몰락을 순문학만 고집하고 추리소설 같은 장르 문학을 폄훼하는 풍토에서 찾기도 한다. 서양 작가들이 대중과 거리가 가까운 장르 문학을 표방하는 데 비해 한국 작가들은 그동안 ‘대중의 기호’일 뿐이라며 장르 문학을 무시해 왔다. 사람들과 문학의 간극은 화성만큼 멀어졌다. 순문학이 우주로 나간 사이 웹소설들이 지구를 점령했다.

이제 사람들은 문학의 아우라를 허영이라고 본다.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문단의 권위주의에 냉소로 답한다. 표절을 표절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도덕적 명분이 없는데 어떻게 대중을 가르칠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그래도 기자는 문학의 생명이 끝나지 않았다고 본다. 웹소설에 대한 열광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토리에 대한 열망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할 것이다. 낡은 문학이 레드오션일 뿐 스토리에 대한 갈망은 여전히 블루오션이다. 지금도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만화가 문학에서 배양되고 있다. 문학이 권위를 되찾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버려야 한다. 권위주의, 패권주의, 계몽주의 같은 낡은 껍데기에서 벗어난다면 희망은 있다.

신동엽의 시처럼 ‘껍데기는 가라’.

민병선 문화부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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