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사를 선택한 이유를 영어로 짧게 말해주세요.” “아…, I will want to dedicate myself. 아….”
넥타이를 하지 않은 남색 재킷 차림의 박원순 서울시장은 면접관의 질문에 또박또박, 진지하게 답했다. 자신감 있는 말투였지만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8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커피숍에서 진행된 ‘취업준비생 토론회’. 취업준비생 2명과 함께 박 시장은 10여 분간 국제행사기획 분야 모의 면접을 봤다. 면접이 끝난 후 박 시장은 “떨렸다”는 말로 당시의 긴장감을 털어놨다.
박 시장은 전날 청년실업 해법을 찾기 위해 ‘일자리 대장정’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높은 취업 문턱으로 아르바이트(알바)가 첫 일자리가 돼 버린 청년들의 현실을 체험하고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겠다는 취지다. 25일 동안 무려 99개 현장을 찾는 강행군이다. 첫날 성동구의 한 대형마트를 찾았다. 근로계약서를 쓰고 선배 직원과 짝을 이뤄 매장에서 냉동·냉장 식품과 라면, 음료를 진열했다. 처음에는 8.5kg짜리 맥주 상자를 들어올리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지만 동료의 도움을 받아 차츰차츰 손놀림도 빨라졌다. 포장지를 벗기고 상자 32개를 30여 분 만에 모두 정리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주차장으로 달려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카트를 수거해 한데 모았다. 박 시장은 3시간 반 동안 시급 5960원짜리 알바로 일하며 청년들과 구슬땀을 흘렸다. 박 시장은 내달 초 일자리 대장정을 하면서 현장에서 느낀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울형 일자리 창출’ 모델을 내놓을 예정이다.
박 시장은 현장에 있을 때 그 진가가 극대화된다. 사람들이 박 시장을 ‘스킨십이 좋은 현장형 시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자치단체장이 하루 정도 ‘보여 주기’식으로 일자리 체험을 한 적은 간간이 있었다. 하지만 거의 한 달간 일정을 통째로 빼가며 일자리 현장을 누비는 일은 아주 드물다.
일부에선 ‘또 이벤트를 한다’ ‘나라님도 못한 걸 서울시장이 어떻게 해결하느냐’며 비아냥댔다. 박 시장은 하나하나 반박하기보다는 “정책수단에 분명 한계가 있겠지만 현장에서 시민과 기업의 고충을 듣고 정책에 반영할 건 반영하고 정부에 건의할 건 하겠다”고 약속했다.
일자리 정책은 책상 앞에 앉아서 하루아침에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구직자나 기업을 지속적으로 찾아가 의견을 듣고 같이 풀어야 할 공공의 숙제 같은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자리 대장정은 단순한 현장 방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더 많은 현장에서 생생한 의견을 듣고 공유해 실행 가능한 실질적 정책을 만드는 기초 작업인 셈이다.
다만 자치단체장은 임기 내 성과를 중요시하는 자리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일자리 대장정이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오히려 박 시장의 진정성이 반감될 수도 있다. 일자리는 양보다 질이다. 단기간의 성과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일자리 대장정은 박 시장의 대표 브랜드가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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