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유근형]뉴햄프셔의 선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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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최근 미국 동북부 뉴햄프셔 주에 다녀왔다. 평소엔 조용한 지방이지만 4년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오픈프라이머리가 처음 실시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내년 2월 오픈프라이머리까지 넉 달이나 남았지만 뉴햄프셔의 주도(州都)인 콩코드 시 곳곳에는 대선 후보들의 홍보 게시물이 내걸렸다. 호텔에서 TV를 켜면 10분이 멀다하고 정치인들의 이미지 광고가 이어졌다. 미국 정치의 중심인 워싱턴에서도 느낄 수 없는 열기였다. 유력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은 연일 직접 뉴햄프셔 지역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뉴햄프셔의 선택이 갖는 무게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선거 열기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뉴햄프셔의 선택’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주 상하원이 원격의료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켜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는 사실. 건강보험 확대(오바마 케어)를 두고 뜨거운 논쟁을 펼쳐왔던 양당이 한마음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웠다. 공화당이 다수인 주 하원이 주도한 법안이지만 민주당 출신 주지사는 거부권 행사 없이 법안에 기꺼이 서명했다.

뉴햄프셔의 선택을 지켜보자니 수년째 찬반 공방만 되풀이하고 있는 국내 원격의료의 현실이 떠올랐다. 박근혜 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인 의료와 정보기술(IT)을 융합하겠다며 원격의료 추진을 선언했다. 하지만 안전성, 대형병원 쏠림 등을 문제 삼은 의료계의 반발에 부닥쳤다. 이 분야 전문가로 평가받은 정진엽 신임 보건복지부 장관도 반전 카드를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상황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것이다. 하지만 ‘뉴햄프셔의 선택’에는 우리가 부분적으로 수용하면 현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시사점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뉴햄프셔는 주 정부에서 면허를 받은 의사들만 원격의료를 할 수 있게 했다. 주민들이 타 지역 병원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자기 지역의 의사들에게 진료를 받도록 유도한 것이다.

우리도 강원도 산골마을에 사는 사람은 반드시 강원도 소재지 병원 의사와만 원격의료를 할 수 있게 제한하면 어떨까. 현재 정부안은 서울 대형병원에서 초진을 받으면 재진부터는 원격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을 터주고 있는데, 이 조항을 없애자는 것이다. 이럴 경우 대형병원 쏠림이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지역거점병원의 역량 강화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뉴햄프셔가 정신건강의학적 치료, 심리지원, 만성질환 관리 등 지역 수요가 높은 진료과목 중심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 우리도 모든 진료과목이 아닌, 원격의료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만 허용한다면 정부와 의료계가 타협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모적인 공방을 거듭하는 사이, 중국은 올해 말부터 미국 의료기관과의 원격진료를 시작한다. 우리가 먼저 원격의료 플랫폼을 개발해 중국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정부와 의료계가 해묵은 논리들을 과감히 던지고 제3의 길을 가기 위해 머리를 맞댈 시간이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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