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중증(重症)’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두고 청와대 여당 야당이 벌이는 시대착오의 퍼레이드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왜 역사 교과서를 나라에서만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박 대통령 본인이 생각하기에 ‘올바른 역사관’을 온 국민이 갖게 되진 않을 거라는 정도는 안다. 왜냐고? 국민은 자신이 배운 역사 교과서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관심도 없다. 중고교생 99%에게 역사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볼 때까지만 신경 써야 할 암기 과목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역사에 관심 있는 1%의 학생은 교과서보다 다양한 역사만화와 서적에서 정보를 더 얻을 수 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박 대통령이 보기에 못마땅할 게 분명한, 게다가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고, 문장은 조악한 역사 서술이 넘친다. 대학에 입학해 그동안 배운 역사와 다른 얘기를 하는 책 한두 권을 읽고 ‘운동권’이 되는 경우도 예전 같지 않다. 국정 역사 교과서로 개인의 역사관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라는 얘기다.
‘우리 아이들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다’는 현수막을 거리에 걸었다가 급히 내린 새누리당도 과거에 머물러 있기는 마찬가지다. 국정화를 반대하는 야당을 종북(從北)으로 몰겠다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다. 그것을 고도의 정치 전술이라고 포장한다면 소가 웃을 일이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한 번 써먹어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충분하다.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빠지지 않는다. 박 대통령과 여당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맞선다며 들고 나온 게 ‘친일·독재’ 프레임이다. 문재인 대표는 21일 “국민은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가 친일과 독재의 가족사 때문에 국정 교과서에 집착한다고 믿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을 겨냥했던 ‘친일파 독재자의 딸’에서 한 발짝도 전진하지 않았다. 새정치연합의 주류를 이루는 1970, 80년대 운동권의 조건반사적인 사고 수준이다.
박근혜 정부는 영속하지 않는다. 벌써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그럼 교육부 계획대로라면 2017년 초 발간 예정인 국정 역사 교과서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야당은 박 대통령의 ‘독재’는 계속될 것이고 자신들은 집권할 가능성이 없다는 듯 ‘친일·독재 옹호 교과서 반대’만을 외친다. “어차피 우리가 집권하면 바뀔 교과서, 잘해보세요. 우리는 정말 시급한 현안에 집중할 테니”라고 무시할 자신감은 없어 보인다.
1979년 10월 26일(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일)에 사고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대통령과 1987년 6월 29일을 끝으로 더이상 생각이 진보하지 않는 것 같은 야당의 ‘종북 vs 친일·독재’ 재방송은 이제 솔직히 지겹다. 이쯤 되면 어느 쪽이든 “쿨(cool)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라고 고백해야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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