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신입사원 면접에 들어간 기업 임원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여학생들은 어쩜 그렇게 말도 잘하고 똑 부러지느냐”는 것. 심지어 “남학생들이 안쓰러울 정도다”라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여학생’이 ‘여직원’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차장과 부장 등 관리자급에선 여성 비율이 현격하게 줄어든다. 굳이 통계를 대지 않아도 많이들 공감할 것이다.
너무나도 진부한 그 질문, ‘그 많던 여학생은 어디로 갔을까’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 싶었다. 물론 여성은 결혼, 출산, 육아 부담 등으로 경력 단절이 생긴다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에 태어난 30, 40대 여성들 중엔 성취욕이 강한 이들이 적지 않다. 경력 단절만으론 설명이 안 된다. 다른 이유는 없을까.
여성 리더십 전문가로부터 생활용품 기업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여성 차장인 A 씨 사례를 들었다. 남들보다 성실했고 꾀부리지 않고 일했다. 야근과 주말 근무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리와 과장까지는 남자 동기보다 뒤지지 않았지만 부장 승진 심사에서 미끄러졌다. 그는 미혼으로 출산, 육아의 변수는 없었다. 다만 “깍쟁이 같다” “자기 일만 잘하고 남과 일하는 데에 서툴 때도 있다”는 주변의 평가가 걸림돌이었다. 특정 업무를 잘해도 리더의 문턱을 넘지 못한 사례다. 이 전문가는 “A 씨가 팀의 성과를 자신의 성과로 착각하기도 했다. 일하고 싶은 상대가 돼야 한다. 조직에서는 때로 희생할 줄 알고 싫은 걸 참을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만난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본보 16일자 A32면 참조) 그는 삼성그룹에서 공채 출신 여성으로는 처음 임원에 올라 부사장까지 지낸 입지전적 인물. 그렇지만 그는 “만만한 사람이 되지 못한 것이 스스로에게 아쉽다”고 말했다. 더 편하게 대하고 소통을 잘했더라면 더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란 취지였다. 그는 머리의 똑똑함이 20대의 경쟁력이라면 40대로 갈수록 너그러우면서도 단단한 심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책임 질 일이 있으면 스스로 나서고, 상사이기 이전에 인간적으로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을 냉정하게 살피고 성취에 취하지 않는 ‘해독제’가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그는 부사장 시절 스스로 사표를 던졌다. 그는 “해당 인물과 자리의 역량이 불일치할 때 조직의 비극이 발생한다”며 “(더 승진하기엔) ‘깜’이 안 된 것 같다”고 스스로를 냉정하게 평가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직장인들에게는 인사철이 시작된다. 나직한 목소리의 최 전 부사장이 한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똑똑한 여자들이 대부분 일 못한다는 소리는 안 들어요. 하지만 ‘괜찮은 동료’가 되는 게 훨씬 중요하죠. 조직에서 혼자 하는 일은 절대로 없으니까요. 승승장구할 때는 놓치기 쉬운 덕목이지만 말년으로 갈수록 태도가 곧 경쟁력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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