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이맘때였다. 이듬해인 2000년 4·13 16대 총선을 앞두고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이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시민단체들이 연합해 반(反)인권 전력이나 납세 비리, 저질 언행 관련자 86명의 명단을 발표하고 공천을 저지하거나 공천을 받을 경우 당선 반대 캠페인을 벌이자는 ‘역(逆)선거운동’이었다. 총선 1년 후 낙선운동은 선거법 위반으로 판결났지만 당시 살생부에 오른 86명 중 70%에 이르는 59명이 고배를 마셨을 정도로 낙선운동은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
당시 대학원생 신분으로 일본의 시민운동 현장 조사를 나가 있던 나는 일본 시민운동가들로부터 관심과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그들은 시민운동단체가 똘똘 뭉쳐 기성 정치권에 당당히 맞서는 한국의 시민운동 파워를 몹시 신기하게 여겼다.
일본에서는 시민운동단체가 우리처럼 전국적인 규모와 체계적 조직을 갖춘 게 아니라 철저하게 지역화 기능화돼 있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할 만한 이슈를 만들어 내기도, 개인화된 일반인의 호응을 끌어내기도 쉽지 않았다. 일본에서 시민운동은 화석화된 단어에 불과했다.
대신 일본에서는 시민운동보다 시민활동이란 단어가 일반적이다. ‘운동’이라는 단어가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동성은 있어도 정치적 색채, 체제 밖 투쟁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시민활동 역시 노동, 환경, 노인, 여성, 재일교포 같은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 문제 등으로 다양하지만 이들은 지역 수준에서 생활밀착형 운동을 벌인다.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어깨너머 보고 자란 이에게 일본의 ‘시민활동’은 ‘애들 장난’처럼 느껴진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보자는 열정만큼은 한국 시민운동가 못지않았다. 다만 정치적 거대담론 대신 나부터 실천, 드라마틱한 사회 변혁보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먼저 바꿔 보자는 풀뿌리운동이었다는 게 다른 점이었다.
그로부터 15년여가 흘렀다. 한국의 시민운동과 일본의 시민활동은 각자의 사회를 바꾸는 데 얼마나 기여했을까. 객관적 검증이 쉽지 않아 섣불리 말하긴 힘들지만 적어도 일반 대중으로부터 얼마나 지지를 받고 공감(共感)을 끌어내고 있는지 따져보면 답은 분명해 보인다.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 이후 한 달 가까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민주노총의 투쟁 방식은 여론전에서 완전히 패했다. 그들은 민주노총이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거룩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전체 임금 노동자의 3%가 가입했을 뿐인 민주노총은 대기업과 공공기관 전교조 등 기성 노조 이익만 추구하는 이익집단이 돼있다. 세월호,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교과서 국정화 등 현안이 터질 때마다 정부 반대 세력과 규합해 정권 타도를 외치는 민주노총은 자기 이익에 반하는 정부의 노동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반대세력을 이용하는 또 다른 권력일 뿐이다.
폭력 시위와 정치 구호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들보다 못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진정어린 실천만이 민주노총 같은 운동단체가 살아남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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