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강경파로 분류되는 금융노조 출신이다. 1978년 한일은행에 들어가 1985년부터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외환위기 시절 금융권 구조조정 저지 투쟁을 주도했고, 2000년 금융노조 상임부위원장을 맡아 총파업을 이끌다 구속되기도 했다. 경력으로만 보면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보다 한참 선배인 셈이다.
지난해 그가 위원장에 당선되자 한국노총도 투쟁 노선을 걷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첫 기자간담회 때 그는 자신을 합리적이고 온건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김 위원장은 “시대가 변한 만큼 노총의 투쟁 방식도 변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당선 이후 그는 “노총은 노총다워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가 꿈꾸는 미래는 노동자들이 ‘조끼’를 떳떳하게 입고 다니는 시대다. 노조의 조끼를 투쟁의 상징이 아니라 대화의 상징으로 만들겠다는 것. 지금 민주노총이 빠져버린 ‘투쟁의 악순환’과 ‘투쟁을 위한 투쟁’도 거부한다.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시청 앞 광장에 10만 명을 모으는 것보다 그에겐 더 중요하다.
그랬던 김 위원장이 최근 오랜만에 ‘투쟁’에 나섰다. 노동개혁 5대 입법이 폐기돼야 한다고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특히 비정규직 고용기간 연장(2→4년)과 파견 확대는 노사정(勞使政) 합의가 되지 않은 만큼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한다. 한데 투쟁 장소가 조계사도, 서울광장도, 청와대도 아니다. 국회 앞이다. 집회 인원은 단 한 명, 김 위원장 본인이다. 노동개혁 입법 저지를 목표로 지난달 30일부터 10일 넘게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는 84만 명(정부 집계)의 조합원이 있다. 이 가운데 4분의 1만 집회에 참석시켜도 서울광장을 꽉 채울 수 있다. 헌법이 보장한 단체행동권을 써서 총파업도 할 수 있다. 한국노총이 총파업에 들어가면 금융과 공공서비스는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 노사정 대타협 파기 선언이라는 카드도 있다. 내부 강경파의 반발을 잠재우고, ‘노동 정치’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은 1인 시위 말고도 이렇게 많다.
현재 그는 철저히 고립돼 있다. 정부 여당은 입법을 압박하고 야당은 분열돼 있으며 내부에서도 노사정 대타협 파기 요구가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카드를 버리고 1인 시위를 택했다. 노사정 대타협의 정신도 끝까지 지켜 보겠다고 한다.
1인 시위의 효과는 크지 않다. 언론도 첫날만 주목하다 이내 잊어버렸다. 김 위원장의 주장이 틀릴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투쟁’이 돋보이는 건 꼭 한상균 위원장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휴대전화 번호를 누르면 “바위처럼 살아가 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노동개혁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오늘도 ‘바위처럼’ 국회 앞에 서 있을 김 위원장의 ‘투쟁’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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